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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Apr 09. 2024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곳은?

화장실 말고

아기가 9개월 때 오전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데 맞은편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기들 소리가 들렸다. 저기는 왜 저렇게 아기들이 많나 싶어서 유모차를 끌고 가봤다.


가까이 가보니 놀이터 바로 앞 집이 어린이집이었다. 즐겁게 놀고 있는 아기들 틈에서 한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적응기간이라 잘 놀다가도 엄마생각이 나서 우는 것이었다. 우리 아기와 개월수가 비슷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품에 안겨있는 더 어린 아기는 이미 적응을 다 끝내서 잘 논다고 했다.


집에서도 가깝고 선생님도 좋은 분들인 것 같아 어린이집을 보낸다면 이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울고 있는 아기를 봐서 그런 건지 엄마가 보고 싶은 우는 아기도, 적응을 끝낸 어린 아기도 모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육아 정보 유튜브를 보면 보통 36개월 이후 기관을 보낼 것을 추천한다. 나는 휴직을 했으니 2돌까지 가정보육을 하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쉬워지기는 개뿔 나날이 육아 난이도가 올라갔다. 매일 심신이 갈려나갔다. 당장에라도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은 마음과 죽어도 못 보내라는 마음이 뒤섞였다.


복직시기에 맞춰서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하고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3월 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한 아이가 이사를 가게 되어 자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다음 주인 4월부터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예상보다 빨리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다.




첫째 날, 둘째 날은 엄마와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 있으니 아기는 키즈카페에 온 듯이 선생님과도, 친구들과도 잘 놀았다. 다만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는 아기들이 여럿 있었고, 감기를 옮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셋째 날부터는 엄마와 한 시간 동안 분리를 하기로 했다. 내심 엄마인 내가 분리불안이 있었는지 전날 새벽 5시에 깨서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셋째 날이 되어 엄마 주스 사 올게 하고 어린이집 밖으로 나왔다. 아기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미끄럼틀을 타고 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언제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올지 몰라 휴대폰을 꼭 붙들고 있었다. 다행히 한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고 아기를 데리러 갔다. 잘 놀다가 마지막에 울음이 터졌다는 소식에 폭풍 칭찬을 해줬다.


넷째 날은 한 시간 반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기는 낌새를 채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아과에 갈 때나 들을 수 있는 강성 울음이었다. 돌아 나오는 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순간, 당황스럽게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봄날씨도 좋고, 벚꽃도 바람에 날리고, 유모차도 가볍고. 아기를 보내고 우는 엄마도 있다던데 오히려 홀가분하니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 시간 반 동안 끊임없이 움직였다. 집안일 좀 하려 들면 모래주머니처럼 엄마 다리에 매달리는 아기가 없으니 이때다 싶어 밀린 집안일을 해치웠다. 허겁지겁이 먹어치우던 밥을 무려 유튜브 보면서 여유롭게 먹었다. 아기가 쫓아 들어올까 불안해하 않고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그저 한 시간 반. 짬이 났을 뿐인데 그 사이에  여러 가지를 했다. 그동안 없다시피 했던 삶의 질이 오랜만에 올라왔다. 아기보다 엄마가 먼저 어린이집에 적응 해버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어린이집 등원길에도 그 말이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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