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는 말이 있다. 작년에 직접 손주를 안겨드리고 나서야 그 말이 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임신 소식을 알리던 식사자리에서 깜짝 놀라며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결혼 후 손주 관련 언급은 일절 안 하셔서 내심 기다리고 계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날의 식사는 무려 소고기였는데 소고기는 초음파 사진에 밀려 한순간에 뒷전이 되었다.뱃속의 젤리곰 시절부터 이미 효도는 시작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을까. 기억을 찬찬히 되돌려보자. 대학에 합격했을 때? 취업했을 때?결혼할 때? 모든 순간 부모님이 기뻐하시긴 했지만 그 순간 잠시였다. 진정한 행복보다는 오히려 축하에 가까운 기쁨이었다. 이제 공부, 취업준비로 인한 고생을 안 해도 되어서,장성한딸내미를 시집보내게 되어서. 그로 인한 다행스러운 기쁨이었다.
그런데 손주는 이때까지의 기쁨과는 또 달랐다. 작은 생명이 꼬물거리는 것, 하품하는 것, 웃는 얼굴, 심지어는 응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부모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일으켰다. 존재 자체가 효도라는 것을 느꼈다. 장성한 딸내미에게는 무뚝뚝하던 할아버지가 손주에게는 온갖 재롱을 다 보여준다. 그 모습이 낯설지만 재미있고 행복하다.
최고의 효도였던 손주가 점점 크면서 가끔은 그 효도가 버거울 때가 있다. 돌이 지나 걸음마를 시작하더니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곧 있으면 뛰어다닐 것 같다. 볼록한 배를 앞으로 내밀고 뒤뚱뒤뚱 돌아다니는 손주가 넘어질까, 어디 부딪힐까 봐 할머니, 할아버지는 쫓아다니기 바쁘다. 아기는 그게 또 재미있어서 도망을 간다.
아기는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잠시도 쉬지 않고 그 작은 발로 뽈뽈뽈 돌아다닌다. 그렇게 30분만 쫓아다니면 할아버지는 지쳐서 ‘아이고 힘들다’를 외치며 매트 위로 누워버린다. 그 모습을 본 아기는 바로 쫓아와서 고사리 손으로 할아버지 배를 퍽퍽 내리친다. 어찌나 야무지게 치는지 작은 고사리 손이 맵다. 어쩔 수 없이 ‘아이고’ 하며 할아버지가 다시 일어난다.
효도인지애매(?)한 순간도 간혹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 순간부터 웃음이 많아진 건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