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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Jan 03. 2024

혼밥 하고 싶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회사에서 주로 부서의 막내가 점심식사 주문을 담당한다. 새로운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자마자 새로운 업무 함께 식사주문 업무(?)도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졌다.


오전 11시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서의 모든 인원에게 '오늘 식사를 같이 하시는지' 아니면 '따로 약속이 있으신지'를 물어봐야 했다. (별말 없으면 식사하는 것으로 간주하다가 꼭 한두 명씩 빠지는 일이 생겼고, 팀장님께서 사전에 인원체크를 하라 명하셨기 때문이다.)


메뉴는 정식집과 중국집을 무한 반복했다. 가끔 새로운 메뉴에 도전할 때면 식사를 마치고 '~ 물이 제일 맛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배달을 시킬 때면 밥이 일찍 와서 식어도 며 늦게 와서 피 같은 점심시간을 까먹어도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밥을 먹을 때도 편하게 먹긴 어렵다. 세대도 다르고 관심사도 천차만별에다 서로에게 애정 없이 그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매일 점심 식탁에서 할 이야깃거리가 뭐가 있겠는가. 주로 정치 얘기, 연예인 얘기, 드라마 얘기, 사내 사건사고 이야기 등이 식탁에 올라온다.


구성원 중 수다쟁이가 있다면 이야깃거리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적당히 리액션만 하면 된다. 마당발을 자처하는 팀장님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 이름만 대면 그 사람의 인생전반에 대하여 거침없이 설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상당 부분 msg가 뿌려져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는 것은 고역이었다. 다들 점 리액션은 줄어들고 밥 먹는 행위에 집중했다.


식사를 빨리 끝내도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고 늦게 끝내도 남들시선이 부담럽다.


드디어 식사시간이 끝나면 이미 점심시간 끝나있다. 






아기가 태어난 지금도 여전히 혼밥을 갈망하고 있다.


신생아 때는 아기 분유 주느라 정작 내 잘 못 챙겨 먹는다. 어느 날은 아기 잘 때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호로록 먹고 치우려던 게 한 숟갈 뜨자마자 응애소리가 들렸다. 얼른 가서 아기를 달래고 돌아오니 밥알이 국물을 다 흡수해서 미역볶음밥 꼴을 하고 있을 때 그 참담한 심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기가 조금 크고 나서는 좀 더 편해지냐. 그건 또 아니다. 16개월인 아기는 양만점 유아식 보다 엄마 간장계란에 관심이 더 많다. 겨우 아기 다 먹이고 이제 내 밥 좀 편히 먹으려고 해도 꼭 엄마도 같이 놀자고 손을 끌어당긴다. 결국 안고 먹으려 해도 숟가락으로 밥이고 반찬이고 쑤시는 재미에 금세 난장판이 된다.


출산 후 새로 습관하나 겼다. 탁에 앉을 때 한쪽 다리식탁의자 밖으로 내밀고 앉는다. 식탁에서 밥 먹으면서 거실에 있는 아기를 지켜보다가 여차하면 튀어나갈 수 있는 준비동작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격렬하게 혼밥 하고 싶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기 좋게 따뜻한 식사를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시간제한 없이, 넷플릭스를 밥친구 삼아 여유롭게 식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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