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지금의 초등학교) 음력 추석이 되면 어머니는 김이 모락 나는 가마솥 앞을 새벽부터 지켜서 있고, 등교를 위해 일어나는 아침엔 이불을 나오기 싫은 그 쌀쌀함을 몸으로 저항하며 창틀의 사각 꼭지에 서린 아직은 어린 서리를 볼 수 있다.
두툼한 모직 버튼다운 남방과 철이 조금 이른 겨울용 고르덴 바지(*그 시절엔 봄가을 옷들을 따로 가진 가정은 많지 않았다)를 두 번 접어서 입고 서는, 방금 가마솥에서 끊여낸 탕국 한 그릇과 김치가 있는 아침을 먹고 가는나서는 등굣길...
오르막을 한참을 올라야 나오는,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봉원 국민학교(진주시)는 공부하기 싫은 나에겐 참말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지만, 어머니가 건네주시는 도시락을 받아 들고 마냥 다시 방의 이불로 들어갈 수 없는 나에겐 가야 할 목적지인 것이다. (* 마흔이 넘어 옛 생각에 찾아가 본 학교는 실제 그리 높지 않더라만 작은 몸에 큰 가방, 신발주머니 그리고 보온 도시락 들고 가는 어린 학생에겐 지리산 정도로 느껴졌겠지 싶었다.)
등굣길은 상봉아파트를 지나 조금 더 가면 활엽 가로수가 눈에 들어오고 그 속에서 난 오색을 보고 또 바닥 나뭇잎을 발로 밀듯이 걷어차가며 학교로 등교하는 친구들과 손과 눈으로 아침인사를 하고 함께 걸어간다. 가는 동안, 손은 조금 시렸고, 아주 천천히 뱉은 입김은 낸 눈에만 겨우 볼 수 있게 코에 살짝 걸쳐진다.
마흔 후반 나의 매일 속에서 그중 10월 마지막 주에 맞이한 가을은..
올해 추석 연휴 기간에 가벼운 옷이 적당했었고, 그 시점에 가을은 아직 멀리 있었는데, 지금 10월 말이 되어서 회사 캠퍼스를 걷다가, "우와~! 가을이 언제 시작한 건지 벌써 한창이네!"라고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