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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Nov 16. 2024

띠옹섬 연대기 08화

할머니는 화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제임스의 모습을 볼 때 그 집중도가 높아졌다. 드디어 나와 같이 제임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화면이 전환 되었다. 가죽 소파에 앉아 머리를 단정히 넘긴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회상하듯 입을 열었다.

     

-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죠.     


할아버지는 주식회사 아일론의 회장이었다. 그는 제임스를 처음 만난 날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어요.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산은 줄고 있었지만 제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죠.     


아일론의 말에 맞춰 자막은 넘어가고 있었다.      


- 그래서 제임스가 저를 찾아와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관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사기꾼인 줄 알았죠. 돈이 많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화려한 그래픽이 나왔다. 지금도 시간 여행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 영상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웜홀’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웜홀의 원리를 연구하여 지구에서도 실현 가능하게 한 것이 주식회사 아일론이 갖고 있는 시간 여행의 기술이라고 했다.      


- 그래서 제가 증명하라고 했죠.     


우주 한 귀퉁이에서 아일론의 모습이 다시금 보였다. 이번에는 그의 옆에 제임스도 함께 였다.      


- 당장은 미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을 열면 미래는 바뀔 것이고 우리에게도 영향이 끼칠 것은 분명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저는 사기꾼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얀 장막이 보였다. 그 뒤로 보이는 그림자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이었다. 종이를 말아 탁자 위에 있는 캡슐에 담는 장면까지 보였다. 그 캡슐을 들고 나온 사람은 조금은 젊어 보이는 제임스였다. 자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임스는 1년 뒤, 3월 15일을 기준으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썼습니다.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곳에 이를 봉인했죠.]     


시계바늘이 빠르게 돌아갔다. 약속의 날이 밝아왔다. 두 사람은 같이 보안실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아일론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굴지의 기업이 망할 거라는 내용,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맞추고 실현되는 정책과 힘을 쓰지 못하는 정책, 전쟁이 발발하고 끝나지 않았을 거라는 것까지. 무엇 하나 틀린 게 없었다. 1년 동안의 의심은 믿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그렇게 주식회사 아일론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평안한 삶을 포기할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죠.     


- 그래서 사람들은 사기꾼이 둘이라고 했습니다.     


제임스는 아일론을 설득했던 방법을 사람들에게도 써먹기로 했다. 1년 동안 그들은 하나의 밈이 되었다. 우리에게나 퍼졌던 밈이 어른들까지도 사용하면서 아일론의 존재 자체도 사라져갔다. 그러는 동안 미국 지방 온라인 뉴스에서 하나의 기사가 나왔다. 시간 여행은 멀지 않았다는 짧은 기사글이었다. 이 기사는 성지순례가 되었다.      


- 이제는 시간 여행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며 DAY 30이라는 문구가 떴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두 눈을 깜박였다. 건조한 듯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이 뭐라고?”     


“시간 여행이요.”     


나는 주식회사 아일론이 앞으로 펼칠 미래, 시간 여행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어떤 말에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신나게 떠들다보니 기운이 빠졌다. 어느새 입이 다물어졌다.      


“·····좋아 보이냐?”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시간문화자가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죠.”     


“아니, 아니, 시간 여행 말고. 제임스라는 사람 말이다.”     


제임스가 좋아 보이냐고?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상을 쓰다듬더니 내가 써준 종이를 잘 챙겼다. 할머니는 슈퍼에서 쿠키 종류의 과자를 건네 주었다.      


오늘 밤은 할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나도 할머니도 주식회사 아일론의 영상을 밤새 같이 보았다. 이는 며칠로 이어졌고 그 사이에 비가 내렸다. 땅의 열기를 식혀주더니 거짓말 같게도 외투를 입지 않으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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