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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Nov 12. 2024

띠옹섬 연대기 06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나의 말에 지민은 김이 빠진 표정이었다.     


“적성에 맞는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재미가 있나 없느냐로 알 수 있지.”     


“그게 평생 갈지 어떻게 알아?”     


“평생은 생각 안 해 봤는데?”


지민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시계는 다음 수업 시간이 곧 다가 오고 있다는 걸 알렸다. 내게 더 물을 것이 없다는 듯 교실로 향했다. 문득 엄마도 하고 싶은 게 있었을까 궁금했다. 엄마는 어떤 일을 장래희망으로 써 내셨을까. 내가 ‘과거-현재-미래’를 살피는 일을 즐겁다고 여기는 것처럼 엄마는 어떤 일에 재미를 느꼈을까. 엄마가 궁금했지만 말할 시간은커녕 마주칠 시간도 없는 우리 관계를 떠올렸다.      


차마 지민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빠와 이별했을 때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걸 물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오래 되었다. 엄마는 잘 웃었지만 위태로웠으니까. 엄마가 감추고 싶어 했기에 모른 척 넘어갔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아빠는 어떤 표정으로 나와 헤어졌을까.     


시간문화자가 되어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면 아빠의 표정을 보는 건 쉬울 것이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때의 존재를 눈으로 담고 싶을 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지민에게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일. 미래를 생각하는 지민에게서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맞은 편 반짝이는 옆 동네의 아파트를 보며 이어폰을 통해 제임스의 말을 듣는다. 그가 말하는 시대는 공간 자본의 종말을 고하고 시간 자본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가 여러 번 말하는 말이다. 이 말은 지금의 나에게 기회 같았다. 버스로 오르막길을 타고 골목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엄마의 예약 문자를 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서로 살결을 맞대고 온기를 느끼며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너 또 이상한 거 보고 있지?”     


이마에 땀이 맺힌 도현이가 뒤에서 앞으로 껑충 뛰었다. 깜짝 놀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 전화를 놓칠 뻔했다.      


“내가 이렇게 나타나지 말랬지?”     


도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내 옆으로 왔다.      


“제임스라고 했었나? 요즘 네가 보고 있는 사람 말이야.”     


“주식회사 아일론, 프로젝트 미래의 팀장이야.”     


“사기꾼 같은데.”     


“이래서 너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꽃동네 슈퍼 앞을 지나갔다. 예전부터 도현은 제임스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여행을 하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는 흐트러질 것이고 미래는 현재의 혼란을 불러올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미래가 사라질 거라고 했다. 미래가 사라지는 데 프로젝트 미래라고 이름 붙인 것이 이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도현은 잘 몰라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잡힌 과거, 누구나 행복할 현재, 그걸 뒷받침할 미래. 그래서 프로젝트 미래다.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는 변화할 수 있다. 이건 나와 도현이 같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시윤아.”     


오랜만에 성 떼고 내 이름을 부르는 도현이의 목소리가 따스했다.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얽매이지 말자.”     


“무슨 소리야?”     


뚱딴지같은 소리에 대문에 열쇠를 꽂다 말고 도현을 보았다.      


“미래를 꿈꾸자. 여기서 미래를 꿈꾸면 따로 시간 여행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다면 나는 이미 여행 중이야. 내 여행을 방해하지 마.”     


도현을 뒤로 하고 대문을 닫았다.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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