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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Nov 07. 2024

띠옹섬 연대기 04화

교실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월초라 자리 이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리의 변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은 아이들은 이번엔 너랑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느니 근처 자리였으면 좋겠다느니 같은 바람을 늘어 놓았다. 지민이도 다가와 같은 말을 했다.

     

“설마, 이번에도 나만 떨어져 앉는 건 아니겠지.”     


뒤에 앉아 있던 윤서와 하은이는 설마, 그럴 일 없을거야 같은 말을 해주었다. 그래도 위로가 부족했던 지민은 나의 손을 잡았다.      


“혹시나 그렇게 되면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나랑 같이 앉자!”     


지민의 말은 제비뽑기를 한 후, 자신과 짝을 이룬 다음에 선생님에게 말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나의 태도가 지민에게는 긍정의 신호로 다가갔나보다. 혼자서 좋았어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A4용지로 만든 제비를 투명 플라스틱통에 담아 왔다. 교탁 위에 통을 올려두셨다. 화이트칠판에 마카로 1분단, 2분단, 3분단을 썼다. 그럼에도 반 친구들은 자신들의 대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실을 한 번 훑더니 교탁에 통을 두 번 쳤다. 시선이 집중 되었다.     


“이번주 주번이 누구지?”     


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나오라고 손짓했다. 내 손에 마카를 건네주었다.     


“제비를 뽑으면 선생님 앞에서 숫자를 말할 것, 그러면 주번이 그 숫자에 맞춰서 이름 쓰기.”


실망한 소리가 교실 안을 메웠다.     


“너희가 뛴다면, 나는 날겠다.”     


선생님은 입꼬리를 올리며 이번에는 3분단부터 나오라고 했다. 친구들이 차례대로 뽑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을 끝으로 자리 바꾸기가 마무리 되었다. 나와 지민은 2분단에서 왼쪽, 4번째 5번째 줄 앞뒤로 안게 되었다. 윤서와 하은은 각각 1분단, 3분단으로 떨어졌다. 칠판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은 선생님은 교무실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칠판에 적혀 있는 내용대로 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자리가 정리되자, 지민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나의 소원이 간절했나봐. 하늘이 도와줬어.”     


윤서와 하은은 지민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아침 조회 시간에 틈을 내 자리를 바꾼 것이라 금방 1교시가 시작 되었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갔다. 담임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계셨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던 선생님은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야?”     


“현장학습 관련해서 질문하려고 왔어요.”     


“어, 그래.”     


선생님은 쌓여 있던 문제집을 치웠다. 등받이가 없는 원형 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앉았다.      


“제가 시간문화자에 관심이 있는데요, 양성 프로그램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턱을 괴고 나의 말을 기다렸다.      


“이걸로 현장학습 신청해도 될까 해서요.”     


“음… 시간문화자 양성 프로그램?”     


“네, 주식회사 아일론에서 진행하는 건데요.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며 생길 문화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기관이에요. 이곳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할 청소년을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선정된 건 아니지만, 신청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출석 일수에 포함할 수 있는지 해서요.”     


선생님은 컴퓨터 책상 위에서 검지손가락을 두들겼다.      


“우선 그게 뭔지 알아보고 다시 이야기 하자.”               




평소처럼 재밌는 과목은 빠르게 지루한 과목은 느리게 지나갔다. 똑같은 50분임에도 느껴지는 시간이 다르다. 이번 시간은 문학 시간이었다. 이미 여러 번 읽어 본 1930년대 시와 시인들의 생애에 대해 배웠다. 문학 선생님은 자주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셨다. 반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도 꿋꿋하게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갔다.     

그 방식이 우리와는 정말 맞지 않았다. 조는 친구들이 많았다. 심하다 싶으면 다른 선생님들은 친구들을 깨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너희는 자라,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문학 선생님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편한 곳에서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걱정한대로 이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찾아온 졸음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눈을 비비고 앉아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해봐도 눈꺼풀이 스르르 닫혔다. 문학 선생님의 책 덮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강(江)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건너가지 않고 바재는 동안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흘렀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저편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      


졸음은 달아났고 설명하는 내용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소월의 기회라는 시입니다. 지금도 기회가 부르고 있을수도 있겠죠.”     


선생님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주변을 둘러보니 5교시 문학 시간에 엎드리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눈을 뜨고 귀를 여세요.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건너가세요.”     


종소리가 울렸다.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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