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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ul 20. 2023

모두에게 안녕과 평온을

하느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소설 《제5 도살장》에 등장하는 ‘평온의 기도’라 알려진 기도문이다. 뜻을 곱씹어 볼 것도 없이 휘리릭 눈으로만 읽어도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듯하다.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건 용기 내어 바꾸고, 무엇보다 그 둘을 분별할 지혜를 가지고 산다면 아주 잘 사는 인생 아닐까.


보통은 반대로 살면서 자신을 괴롭힌다.

바꿀 수 없는 걸 어떻게 해 보려고 바둥거리고, 바꿀 수 있는 건데 그냥 받아들이며 살고, 당연히 둘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해 인생이 많이 꼬인다.      


소설 속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를 경험하고부터 시간여행을 하게 됐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는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빌었다.      


나는 어떤가?

그게 뭐든 주로 받아들이고 사는 편이다. 억울함, 분노, 절망 같은 걸 느끼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냥 쫄보라 따지지 못하고, 바꾸려 애쓰는 걸 일찍 포기하면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 경우다. 나도 빌리처럼 과거와 현재를 바꾸지 못했고, 왠지 미래도 바꾸지 못할 것 같다. 후회가 밀려온다.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다.


이젠 좀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바꿀 수 있는 건 조금씩 바꾸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변하고 내가 사는 세상도 1만큼은 변해갈 여지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

여름이다. 

태양이 이글이글 뜨겁다. 

저 밖에 잘못 나갔다 큰일이라도 당할 것 같다. 

그래도 이 단순한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붓 터치 때문인지 멀리 보이는 형제섬은 막 꿈틀거리는 듯하지만, 

섬을 싸고 있는 바다와 하늘이 평온해 보여 형제섬 안의 세상도 덩달아 평온할 듯 보인다. 


사는 것도 그런 걸 거다.

버둥거리며 싸울 때와 조용히 받아들일 때가 잘 섞여야 마침내 평온이 찾아오는...     


평온하고 평범할 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주 조금씩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아, 그런데...

지금은 너무 덥다.

그러니 지금은 마룻바닥에 철썩 붙어 우선 버티고,

곧 다가올 숨이 쉬어지는 시간에,

그때는 

1만큼만 더 용기 있고,

1만큼만 더 지혜롭게,


그렇게 살아보는 걸로. 


박은성, <형제섬>, 캔버스에 아크릴, 40.9 x 31.8 cm,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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