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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킴카다시안 Apr 27. 2023

1. 자신의 바닥까지 내려가 봤나요?

1. 자신의 바닥까지 내려가 봤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만든 통장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정말 모범생처럼 꾸준하게 모았다. 내가 통장에 돈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는 엄마의 영향이 제일 크다. 엄마는 대학생 때 돈을 모아서 유럽으로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가셨는데 그때의 추억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자식과 한번 더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유럽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하셨고 알바부터 시작해 결혼 하시고도 내가 뱃속에 있을 당시 학습지선생님으로 일을 하셨다. 임신한 몸으로 가정집을 왔다 갔다 거리며 차에서 핫도그로 끼리를 해결하시곤 하셨다고 한다. 하루에 10명의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하시니, 영업실적이 높아 이달의 선생님도 자주 되시며 열심히 일하시다 나를 낳고도 학습지 선생님을 계속 하셨고 중간중간 할머니집에 맡긴 나에게 모유를 먹이러 잠시 들렸다가 다시 일을 나가시곤 하셨다. 동생이 생기고나서 아빠와 엄마는 같이 맞벌이로 작게 정육점을 시작하셨고 그렇게 엄마는 20대부터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내가 13살, 남동생이 11살이 되던 해에 5개국의 유럽을 여행할 수 있었다. (아빠는 가게를 오랫동안 비우지 못한다고 셋만 가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경험이고 누가 초등학교 6학년 때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고 로마의 콜로세움을 볼 경험을 하겠는가.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엄마의 희생과 대학생 때 엄마가 배낭여행 경험을 포기하지 않고 돈을 모아 우리에게 경험해주고 싶어한 마음씨에 감사하고 엄마란 대단하다고 위대하다고 느끼고 있다. 유럽여행을 가서 엄마가 보여주고 싶은 고귀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유럽의 여러박물관을 가볼 수 있었고 유럽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을 체험해 보는 등, 정말 귀한 시간과 시각을 다른 또래보다 일찍 느껴볼 수 있었다. 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을 갈 계획을 어렸을 때부터 세웠고 용돈과 각 연휴 때마다 받은 돈은 그대로 통장에 넣어 600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사건 1.

3월은 학기의 시작이자 이제는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갈 시기였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2월 후반에 미리 기숙사에 와있었고 같이 올라온 친구와 처음으로 홍대를 가게 되었다. 볼거리, 놀거리, 사람구경, 눈은 정신없이 바빴고 친구와 둘이 신나게 놀던 중 남성분이 다가와 "종이 뽑기 한번 해봐요!"라고 말을 걸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실 그런 건 잘 안 하지만 친구가 뽑는 바람에 나도 얼떨결에 같이 뽑았고 종이 안에는  <키프티콘 당첨>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그 직원을 따라 핸드폰가게로 들어갔고 그 안에는 누가 봐도 어딘가 하다만 인테리어에 8명 정도 되는 젊은 직원들이 일대일로 사람들을 상담하고 있었다. 나를 담당한 직원을 키프티콘을 받으려면 앱이 있어야 되는데 그 앱을 깔아야 된다고 했고 자신에게 맞기라며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리고 갑자기 약정이 4년이나 되는데 "핸드폰을 누가 4년이나 써요"라며" 온 김에 2년 악정으로 바꿔줄게요. 돈 전혀 안 드는 거라 걱정할 필요 없어요. 고마우면 나중에 커피나 사줘요"라고 했다. 누가 저런 병*겉은 말을 믿나 싶겠지만 은근 가게에 같이 사기당하는 사람은 많았다. 친구랑도 일부로 떨어드려 놨었고 정신없이 말을 걸고 착착 빠르게 상황은 진행되었고 어느새 핸드폰이 바뀌어있었다. 사기당하기 쉬운 '이제 막 서울 올라온 촌년'인 걸 어찌 알고 사기를 쳤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없는 내 모습과 바뀐 핸드폰을 들고 얼떨떨하게 나온 내모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폰 기종이 바뀐 거구나 별 생각이 없었지만 한 달이 지난 후 부모님께 나가는 핸드폰 요금은 두개의 핸드폰 요금이 나가는데 한개가 한달에 10만원 이상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두 개의 핸드폰 약정이 끝날 때까지 요금을 내야 했다. (이 때 친구는 생일이 않지나서 아직 미성년자 신분이기에 사기를 칠 수 없었고 나는 1월이 생일이라서 가능했던 거임.)


내 핸드폰 다시 돌려달라고 항의하는 것조차 기간은 2주로 정해져 있었고 사기당한 당일부터 나는 아무 말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사실 말하지 않는 이유가 서울에서 혼자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달 후 고향집에 휴대폰 요금은 2배이상이 결제 되었고 부모님은 당시 원래 가던 휴대폰가게에 전화해 내가 핸드폰이 바뀐 사실과 두 개의 핸드폰 요금이 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부모님께 사실대로 설명드렸고 부모님은 상의 끝에 미리 이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을 내 잘못으로, 2개의 핸드폰 요금을 내가 책임지기로 결정하여 400만 원을 내 통장에서 가져가셨다. 


통장에 있는 내 악착같이 모은 돈은 순식간에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고 절 때 건들지 않은 나의 배낭여행 돈은 허무하게 날라가버렸다. 그 때 기숙사에서 부모님과 전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였는데 정말 속 깊은 어딘가가 썩어 문들어지는 거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자 혼미해졌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2인실 기숙사를 쓰던 때여서 급히 조용한 밖에 있는 흡연실에서 억눌렀던 울음을 터뜨리며 홀로 통곡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모았는데 그 폰사기 하나로 인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400만원은 큰 돈이지만 20살 당시 너무 충격이였고 누구 하나 죽을 것마냥 울었던 것 같다.


사건 2.

슬퍼하는 것도 잠시 핸드폰 사기를 당하자마자 나는 바로 알바를 구했다. 주말엔 편의점에서 일하고 평일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금요일은 9시간을 편의점에서 일하는 날이였고 어느때와 같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당시 새로 주문한 재고를 정리하고 있었고 그때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담배를 보루로 사가셨다. 그런데 정신없는 나머지 내가 보루가 아닌 1갑으로 찍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아줌마도 다시와서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사장님이 정산하시는 도중 십만원 정도가 부족해, 이유를 찾으려고 일일이 CCTV를 찾아 보셨고 결국 내가 그 범인이었다. 영상 속 아줌마는 핸드폰 결제를 확인하신 후 그냥 가버리셨다. 그 아줌마를 탓할 수 없는 내 잘못이지만, 뒤 늦게 영상을 확인하며 얼마나 그 아줌마가 밉던지.. 사장님은 cctv에 음성을 안들리니 친분이 있어서 일부로 그런 거 아니냐는 말투로 엉뚱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다 증거 있고 본부에서 알면 너 100배 보상해야 돼"라고 하셨고 영상 속 나는 오랫동안 그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눴고 누가봐도 고의로 한 행동같다고 하셨다. 알바도 처음이었던 나는 "아줌마랑 친분이 없다, 무슨소리를 하는 거냐"라는 말은 입으로 나오지 못했고 어차피 내가 잘 못한 행동이기에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고의로 그런게 절때 아니었지만 사장님의 압박과 가스라이팅에 너무 깊게 넘어가버렸고 손과 얼굴은 식은 땀과 눈에 눈물은 닭똥집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사장님은 반성문을 내일까지 써오라고 하셨고 자진사퇴랑 '이번달치 월급 안 받겠습니다'라고 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이미 내 멘탈은 정신을 못차렸었고 죄수인 마냥 반성문을 A4 꽉채워서 쓰고 사장님에게 주었다. 사장님은 반성문에 마지막으로 사인 하라고 하셔서 싸인까지 하고난 후에 나는해고를 당했다. 그렇게 나는 가스라이팅에 사기까지 또 당한 셈이다. 


이번에는 부모님께 힘겹게 말씀드렸고 부모님은 핸드폰 사기보다 더 크게 화내시면서 너는 그걸 당하고만 있었냐고 하며 부모님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화를 내시며 얼굴은 눈물로 가득 찼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돈이 얼마가 들든 간에 네가 아르바이트해서 일한 돈 꼭 다 돌려받게 할 거야"라고 하셨다. 아빠는 사장 전화번호를 내게 물어봐 바로 전화를 했고  당당한 사장의 말투에 아빠는 금방이라도 만나서 싸울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엄마와 나는 아빠를 진정시키고 어찌저찌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 아빠는 상의 끝에 법을 잘 아는 지인분에게 편의점에서 당한 일을 이야기했고 돌아오는 답변은 "받지 못한다"였다. 이유는 내가 반성문에 한 서명 때문이었다. 사인을 한 순간 나는 내 행동에 인정을 하는 것이고 이건 법적으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지만 내 감정보다 부모님이 더 걱정되었다. 부모님이 나보다 더 크게 화내시고 울고 슬퍼하시는 모습은 내가 20년동안 같이 살며 처음 보는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심하게 아려오는 느낌이였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는 내 감정은 화가 나거나 억울함보다 더욱 크게 미안함이 밀려왔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자존심과 자존감은 물론이고, 사람을 믿는 신뢰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서워하고 누군가 친절을 배풀면 심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가 되었고 그렇게 숨어서 생활하다 보니 내 성격도 자연스럽게 소심하고 우울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연락하는 것조차 피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내가 당한 상황을 알까 봐, 나를 한심하게 볼까 봐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혐오로 똘똘 뭉쳐있었던 시기였다.


사건3.

악몽과도 같았던 1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이었다. 내 몸은 겉과 속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스트레스와 식습관 문제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는데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바로 폭식이었다. 배달음식과 편의점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고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고 목구멍이 답답할 때까지 먹었다. 그렇게 먹다 보면 조금만 움직여도 속이 울렁거리고 매스꺼웠기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구토를 하였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정말 심하게 났는데, 여드름이 거의 염증으로만 올라와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아프고 따가웠다. 두피는 지루성 피부 때문에 머리를 매번 감아도 간질거렸고 탈모도 왔었다. 몸도 얼굴도 들고 다닐 수 없던 그때는 가족들이 집에 와도 얼굴이 부끄러워서 방 안에만 있고 거실에는 가족들이 다 나갔을 때나 새벽에만 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하다가 알게 된 언니가 나를 보더니 아는 분이 피부가 진짜 안 좋았는데 어떤 제품을 쓰고나서 지금 너무 좋아졌고 다이어트도 성공하셨다고 한다는 말에 나는 시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어떤 제품인지 물어봤고 언니가 하고 있는 다단계의 화장품을 백만 원어치를 샀다. 사실 다단계가 뭔지 그때까지 몰랐고 이후 검색해보고 물어봐서 다단계인지 알게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다단계 화장품을 열심히 발랐지만 여드름이 나아지기는 꺼녕 아토피까지 얻게 되었다. 사진을 보내주며 다단계회사에 컴플레인을 걸었고 회사에서는 피부 안에 있는 염증과 세균들이 소독되어서 밖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라고 하셨다. 하지만 상태는 여전히 간지럽고 붉게 얼굴이 올라와 한동안 병원에서 시술과 약을 먹으며 일상생활도 못할 정도의 얼굴상태가 되었고 알바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면서 집을 못 나갔던 것 같다. 


놀랍게도 여기까지가 상반기 반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1년도 안돼서 이런 일이 일어난 지 놀랍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가족들은 대충은 알지만 모르는일이 훨씬 많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이런 상황들로 인해서 내 성장기와 젊은 나이에 미리 알아차린 tip들을 공유하고 싶어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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