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먹토( 식이장애)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나는 식욕이 아닌 항상 마음이 공허하고 마음 한 구석이 썩어가는 것만 같았다.
공허하면 채워야 하니 그걸 음식으로 채운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으로 우울한 일이 있으면 달달한 디저트로 심란한 마음을 음식으로 잊으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여 시작된 것이다.
위염은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가끔씩 걸렸었다. 시험기간이나 고삼 입시기간 때 걸렸던 것 말고는 없었지만 20살 때 매 월 걸렸다. 걸리고 약 먹고 나아지면 다시 걸리고 반복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워낙 너는 위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한 것 같다는 식으로 항상 위로 아닌 걱정을 매번 하시곤 했다. 나는 병원에서 엄마와 이야기하면 매번 조용히 고개만 그 덕이 곤 했는데 그 이유는 먹고 토하는 행동으로 인해서 위염이 더 심해지고 자주 걸린다고는 말할 용기도, 아니 부모님께 말할 생각조차 안 했다. 그저 나만의 습관이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하기 부끄러운 행동이니 나만 침묵하고 있으면 되었다.
집에 살면서 가족들은 집에 오랫동안 비어있고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음식도 항상 가득 채워 저 있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음식을 보이는 데로 먹기 시작했다. 영화 한 편을 틀고 오후 1시부터 먹기 시작한다. 아침에 가족들이 먹고 남은 볶음밥과 불고기, 반찬을 꺼내어 첫끼를 먹는다. 그렇게 다 먹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디저트를 가져와 마저 영화를 보면서 먹는다. 과자 박스에 있는 과자 2,3개를 꺼내어 먹는다. 먹다가 현타가 한 번씩 온다. 그럼 먹던 과자를 지퍼백에 넣어 안 보이는 곳에 둔다. 그럼 또 입 안의 짠맛으로 인해 배가 터질 것 같아도 입이 간질거리고 어느새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었다. 역시 짠 거 뒤에는 단거로 마무리해야지 하며 아이스크림 한 개를 꺼낸다. 아이스크림은 녹기 때문에 빨리 먹어치운다. 너무 빨리 먹은 남어지 내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헷갈리게 된다. 먹으면서 영화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총 3개 정도 먹고 나면 속이 울렁거려 식욕이 없어진다. 그럼 내 식사는 마무리하게 된다. 오후 1시에 먹은 점심이 오후 3시~4시 정도 된다. 말이 되나 싶지만.. 진짜로 이렇게 먹고 먹고 먹었다. 과장한 것 없이 진실만을 말하고 나조차 이런 내 모습이 말도 안 되고 경악스러웠다. 하루를 저렇게 한 끼 먹고 나면 처음엔 울렁거리다 조금만 움직여도 안에 있는 음식이 나올 것만 갔았다. 어쩔 수 없이 토를 하기 시작했고 막상 하고 나니깐 속도 괜찮아지고 올챙이 배처럼 튀어나온 내 배가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살찌는 게 싫고 배부를 느낌도 한결 나아진 느낌이 들어 그 이후로 가끔씩 폭식을 하고 나면 화장실 가서 손을 깨끗이 닦고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억지로 토를 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이런 행동은 하기 전에도 하면서도 다 하고도 후회스럽고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중독된 것만 같았다. 나쁜 행동인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이 자주 하기 시작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다 싶으면 화장실로 향했고 폭식할 것 같은 날에는 아예 예상을 하고 어차피 토할 거니깐 편의점의 싼 크림빵과 아이스크림, 과자을 사서 집으로 와서 다 먹으면 토하곤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버린 먹토는 아무 감정 없이 토를 하고 토할 때 나오는 눈물을 닦고 세수를 하고 이런 행동이 생생하게 기억 남는다 )
어느 때와 같이 먹토를 하다가 한 번은 피가 같이 나왔다. 손톱 때문에 목구멍에 난 상처인지 속에서 나온 피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피를 본 순간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행동에 대해 검색해 보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찾고 찾다 보니, 내가 하는 행동은 정신질환이자 장애를 앓고 있었다. 한마디로 식이장애가 있었다. 식이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이상하다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행동은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하고 식단에 강박이 심하기보다 자신이 나약하나고 느끼고 규칙을 지키지 못하거나, 폭식을 한 자신의 혐오에 '자기 유발구토'를 하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모두 충격과 우울에 빠져있었다. 식이장애는 우울증의 한 종류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식이장애를 고치려면 정신과에 입원하거나 약을 처방받아서 먹는 것을 추천하지만 나는 모두에게 비밀로 했었기에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다. 식이장애는 다른 병처럼 약을 먹고 입원하면 바로 났는 병이 아니다. 나아지는 데는 시간이 다른 질병보다 오래 거리고 자기 자신이 끊어내야 되는 의지와 심리적으로도 단단해야 되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와 병행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이 세 가지를 병행한다고 한다.
자기 구토유발, 변비약, 다이어트 식욕억제 또는 다이어트 탄수화물 커팅제. 나 또한 자기 구토유발+변비약+ 다이어트 약을 병행하고 있었다. 구토를 하던 이유는 내가 먹은 칼로리를 제거하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사실 먹은 것의 50%조차 제거되지 않는다고 한다. 추가로 더 적어보겠다.
-역류성 식도염과 다양한 신체의 장애를 일으킨다
-장기간 먹토를 하면 얼굴형이 변하는 데 특히 침샘 부분이 늘어질 수 있다
-이외로 치아부식, 피로누적과 탈모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그만하겠지 싶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금연을 하는 행동과 같이 중간에 건강하게 먹고 먹토를 안 할 때도 있었지만 또다시 폭식을 할 때면 가끔씩 하고는 했다. 이런 내가 비참했지만 그냥 그런 내가 나를 침묵하고 살아왔다.
네이버에 식이장애 개선하는 방법, 해결법 등 검색하면 건강한 식단, 적당한 운동,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기 또는 정신병원에 방문해 보기 등 도움이 된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와닿지 않았고 이 문제를 고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픈 기억들, 받은 상처들, 뭘 해도 공허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불안한 느낌. 공허한 기분을 채워본다는 게 음식으로 배를 채웠던 습관들.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지 잘못을 바로 잡아줄 방법을 몰랐었다.
4-1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단계별로 올라가야 한다. 먹토를 비롯해서 거식증이나 다이어트 등 한 번에, 단기간에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 단기간에 얻을수록 결과의 유통기한은 짧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나의 식이장애는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치료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러한 질병의 뿌리부터 찾아야 했고 깊이 고민하고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나를 아껴주고 배려해 준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었고 사기당한 나에게 자괴감과 믿기 힘들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잃었던 돈을 채우는데 급급했던 당시에는 어느새 목표가 돈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던 나는 만나는 사람은 손님과 사장님이 다였다. (사실 돈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점점 둘러보면서 내 옆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가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건 폭식이었고 식이장애로 이어졌던 것이다.
나를 내가 온전히 사랑하기까지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해야 되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나의 상태를 물어보면 우린 "괜찮다"라는 '정답'이 존재한다. 나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정의해 봤으면 좋겠다. 정의가 아니더라도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를 서술해 보고 나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알아봤으면 한다. 상태가 아닌 감정, 감정이야 말로 정의가 없는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면 우리는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아주고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이해해 줘야 한다.
[여기서 상태와 감정의 차이점은 상태는 외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단순한 외적 상황을 말할 수도 있고 시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은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조차 보기 어려운 게 감정이다. 감정은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가짜 감정으로 나를 속일 수도 상대방을 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짜 감정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나는 내 감정을 진심으로 보기까지 오래 걸린 것도 있지만 알아차린 순간 현타가 왔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가장 큰 고비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내면의 감정을 보기 위해 시도해 본 사람으로서 빨리 익숙해지고 알아가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1) 감정일기: 일상일기장이 아닌 감정을 서술해 보는 것이다. 오늘 내가 설레는 감정이 있었다면 그 상황을 쓰는 게 아니라 감정을 써보는 것이다. 내가 왜 설레었는지, 설레는 대상이 누군지, 그 대상이 설레었던 이유를 써보는 것이다. 2) 은유/비유법 사용해 보기: 오늘 내가 설레었던 대상, 이유, 대상의 이유 등 써봤다면 이제 그 설레던 감정을 비유법을 써서 시를 써보든, 짧게 글을 써보는 것이다. 3) 일어나자마자 명상하기: 일어나서 핸드폰부터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일어나자마자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다. '호흡명상'은 들숨과 날숨을 깊게 유지하면서 신체의 자율 신경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활정화 되면 신체와 정신도 이완이 되는 상태가 만들어지고 혈압이 낮아져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기억력 향상과 스트레스 관리 능력, 마음 챙김, 내적 알아차림이 향상되고 우울증 감소와 수면의 질이 개선된다고 한다. 4) 단어에 감정을: 한 단어를 골라 감정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더라도 그 단어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는 것인데 예를 들어 "'못'은 고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못이 없으면 형태를 이루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집중력과 온 힘을 다해 정확한 위치에 못을 박아야 한다. 못과 같은 날카롭지만 흔들리지 않은, 무너지지 않는 멘탈을 만들고 싶다."
4-2
“how are you?”, “너 괜찮아?, 무슨 일 있어?” 형식적인 질문을 하면 우리는 전형적인 대답을 한다. 문화인지 , 사회적 합의라도 한 것 마냥 우리는 “ 아임파인 땡큐, 괜찮아, 기분 좋지, 아무 일 없어”라고 대답한다. 이건 내 감정이 아닌 그냥 객관식 중 하나를 체크한 게 아닌가 싶다. 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아님 내가 기본 상식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하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임파인-땡큐 앤유?”를 입에 달달 외우면서 자동화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내 기분과 감정은 상관없는 무의미한 대답인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이제는 달라질 때이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을 궁금해해 보고 과연 내가 ‘아임파인’ 인가 생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과 내 몸 상태를 1순위로 두고 존중해야 한다.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남을 위해 하는 일보다 어렵고 남 밑에서 일하는 게 내가 사업을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고 내 기분을 말하는 것보다 ‘난 괜찮아’가 쉬운 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말해도 괜찮을 때 아닐까? 내가 나를 아는 건 어렵지만 조금씩 실천해본다면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무엇을 선택하던 최선의 선택을 한 나를 존중해 주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책임을 다할 것이다. 성인이 된 20살도, 직장을 다니는 34살 삼촌도, 우리 가장 51살 아빠도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책임이란 나이가 들어서 지게 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막중해지는 것도 아니다. 20살이었던 내가 사기당한 것을 오로지 내가 책임을 지려 발버둥 쳐봤기에 이젠 더 대담해지고 어떤 선택을 하던 책임질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많이 언급되는데 정말 공감하는 얘기이다. 친구들은 항상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부러워했다. 나는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만 그 대가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 무게가 막중할지라도 또는 불행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한다면, 나는 다시 신중하게 그리고 자유로이 선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