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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Apr 27. 2023

2. 복구&부작용



   

복구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1년이 지나서야 털어 놓았다. “이런 일들이 있었고.. 잃었던 돈을  4개월만에 1000만원으로 만들었어” 라고 말하면 다들 놀라거나 자기같았으면 사기 당한 것에 좌절하는 시간을 1년을 보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 친구의 말이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예지야 너가 대단한 건 돈을 다시 복구한 돈도 있지만, 너가 당한 일을 현실적으로 받아드리고 복구를 해야겠다고 ‘다짐’ 했다는게 나는 더 놀랍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났고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 자존감을 서서히 되찾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내 자아와 자기혐오감에 둘러싸였던 나에게 중요한 한마디 였다.


그렇다. 나는 4개월만에 천만원을 통장에 찍었다. 

학교는 방학을 시작하고 나는 기숙사에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는 내려가기 전에 알바를 다 알아보고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알바 면접을 보러 다녔고 방학 때 서울에서 살 때보다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돈을 안 벌면 죽을 병에 걸리나 싶을 정도로 알바 3탕을 뛰면서 고향에 내려와서 열심히 돈만 모았다.

정말 나는 돈을 위해서 태어난 것 마냥 돈을 무작정 모았고 친구는 3개월 중 고등학교 절친 딱 1명 만났던 게 다였다. 이쯤되면 알바와 돈 모으는 것에 빠져 인간관계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 당시 돈만 제대로 내 계좌에 들어온다면 상관없었다. 쓰리잡으로 인해 밥 먹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매번 허겁지겁 먹거나 물에 타먹는 선식을 걸어다니며 먹는 날도 많았다. 이렇게 나는 방학이 끝날 때즘 1000만원을 모았고 그게 다였다. 기계처럼 돈만 보며 쫒아다녔고 방학동안 억지 웃음이 아닌 진짜로 기뻐서 웃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없었다.



갓생을 사는 것인가 혹사시키는 것인가


핸드폰 사기부터 시작해 나는 쭉 내 꿈은 돈인 것 마냥 돈벌기 바빴다. 왜 그렇게까지 벌었을까 싶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그렇게 잃었던 돈에 집작했던 것 같다. 서울에 살때도 고향에 내려와서도 알바를 그만뒀던 적은 많이만 알바를 쉬어본적을 없었다. 1년동안 정말 많은 알바를 해봤다. 알바앱에서 지원할때 쓴 알바 경력을 써보자면

 [ 21~22년동안 했던 알바 ]   

2021년 :  수제 햄버거집(코로나로 문 닫음), 을지로 이태리 레스토랑, 편의점, 판모밀(여름- 3개월), 한식주점, 아파트입주청소(건당10만원)


2022년 :  옛날통닭 , 초밥가게 , 블로그 포스팅 마케팅회사


2023년: 스크린골프장(진행중), sns 기사글 포스팅 프리랜서


이정도면 알바를 많이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알바를 풀타임을 뛰거나 2탕을 뛰는 일이 흔했다. 학교 수업과 자격증 준비, 알바까지 흔히 말하는 갓생을 살았다고 봐도 무관하다. 거기에 다이어트까지 병행했던 적이 있는데 오전 수업이 있는 화수목에는 7시에 헬스장을 가서 9시 수업을 듣고 저녁 6시 알바를 가는 일정도 있었다. 열심히 살아보이고 실제로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그게 다였다. 나를 위한 시가은 정작 없었고 나를 돌봐줄 시간도 없었다. 돈은 쌓여갔지만 몸은 상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부작용

서울에 살 때 기숙사에 살아 밥은 꼭 사먹어야 했었다. 매일 사먹는게 부담이 되어서 나는 하루에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로 하루 한끼를 해결했고 낮에는 수업, 저녁에는 알바를 뛰어야 했기에 매일 공복에 카페인, 밥먹고 카페인, 카페인 없으면 안되는 삶이었다. 이런 악질적인 루틴으로 살아왔던 내 몸은 당연히 안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매일 공복으로 카페인을 넣으니 위가 약해져 위염이 자주 걸렸다. 급성위염은 2주에 한번씩 걸려서 약을 달고 살았고 살이 급격하게 많이 빠진 상태로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리는 6개월간 하지 않았었다. 이외에 잔병들이 많이 걸렸지만 나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즘 주기적으로 걸리는 위염으로 인해 엄마는 한번 건강검진 받아보자고 했고 아무 생각없이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결과는 충격적이였다 . 의사선생님은 20살의 위가 아니라고 어떻게 하면 이런 위를 만들 수있냐고 하셨고 나는 위암이 걸리기 직전단계까지 왔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내시경 결과를 본 게 불행 중 다행인건지 모르겠다며 말씀을 이어갔고 나는 마음 속으로 ‘다행이네’ 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눈에는 충격적인 얼굴과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처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180도 바뀐 분위기로 변했고 결국 가족과 상의 끝에 나는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식사 시간도 지켜가며 약을 4번씩 먹어야 했다. 또한 집밥과 나물 위주로 식사를 해야 했기에 학교를 통학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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