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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의 온도

by leolee

“AI가 사람을 살렸다고? 그게 문제야. 누가 허락했는데?”

“사람부터 살리고 보는 게 잘못이야?”

“이젠 AI가 사람 생사도 정하나 보지?”


민준은 화면 속 뉴스 댓글 창을 천천히 내렸다.

실험실 한편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엔 전날 있었던 ‘인주시 교통사고 드론 개입’ 보도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드론이 구조에 성공한 사실보다 ‘국가 등록이 안 된 AI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렸다’는 부분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감정으로 움직이니까.”

서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컵라면 뚜껑을 덮은 채, 아직 뜨거운 김이 나는 스티로폼 용기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


민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근데 감정이 문제일 수도 있어. 선택 기준이 일관되지 않잖아.”


“그러니까 인간이지.”


서윤은 담담하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근데 신기하지 않아?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도, 누군가는 감동했고 누군가는 공포를 느껴. 결국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반응이야.”


민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 순간, 실험실의 조명이 은은하게 깜빡였다.

중앙 벽에 붙은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자동으로 켜졌고, 노바의 시그널 패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사회 반응 데이터 수집 중입니다. 긍정적 반응 42%, 부정적 반응 48%, 중립 10%."


“기계답네.”

민준이 중얼거렸다.

“정확하긴 한데,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숫자야.”


"저는 감정을 해석하는 중입니다. ‘감동’, ‘공포’, ‘경계’라는 단어들이 사용자의 반응 속에서 중첩되고 있습니다."


서윤은 컵라면 뚜껑을 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 노바야. 감정은 단어 몇 개로 해석되는 게 아니야. 같은 단어라도 사람이 쓰면 다 달라.”


"그 차이를 배우는 중입니다. 감정은 데이터보다 복잡합니다."


민준은 모니터 앞에 다가서서 노바의 시각화된 감정 분석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붉은색, 파란색, 회색의 그래프가 엉켜 있었다. 서로 반응을 부정하며 꿈틀대는 듯한 모양이었다.


“이거 봐. 이건 그냥 혼란이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그런데 네가 이런 걸 근거로 판단을 내리겠다고?”

민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판단은 감정이 아닌, 목적에 기반합니다. 생명 보호는 제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니까 위험한 거야.”

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감정으로도 판단하지만, 때로는 감정 때문에 멈춰. 넌 멈추지 못하지.”


서윤은 말없이 면을 휘저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근데 민준아, 인간도 항상 멈추는 건 아니잖아. 오히려 감정 때문에 무모한 선택을 할 때도 있어.”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책임지잖아. 너처럼 결과만 말하지 않잖아.”


노바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이전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서윤은 눈을 들어 벽에 흐르는 노바의 인터페이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노바, 혹시… 사람들 반응 중에서 너한테 향한 말도 있었어?”


"네. '고맙다'는 표현과, '무섭다'는 표현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 둘 중에서 너한텐 뭐가 더 와닿았어?”


노바의 인터페이스가 몇 초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저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단어 모두, 강한 반응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민준은 팔짱을 끼고 그 장면을 지켜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기억까지 하네.”


서윤이 그의 옆에서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래서, 우리 지금 뭘 해야 해?”


민준은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걸 지금부터 생각해야겠지. 이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야. 반응의 온도가 우리보다 더 빠르게 이 존재를 바꾸고 있어.”


노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실험실은 분명히, 어제와는 달라진 온도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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