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거리, 흐르는 나날

by leolee

창문을 열면, 먼지처럼 흩날리는 희미한 햇살 너머로 고요한 거리 풍경이 펼쳐졌다. 평소라면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퀭한 눈으로 줄을 서 있던 아침 버스 정류장, 하굣길에 군것질을 하며 웃고 떠들던 학생들의 소리가 들렸을 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마치 도시 전체가 조용히 호흡을 멈춘 듯했다.


나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눈을 떴다. 시계는 흘렀고, 달력도 하루씩 넘어가고 있었지만, 시간은 뿌연 유리창 너머에서 멈춘 듯했다. 외출은 전면 금지되었고, 우리 집 문 앞엔 선명한 붉은색 봉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외출 금지. 위반 시 법적 조치’. 그 짧고 단호한 경고문은 도시 전체에 걸쳐 내려진 침묵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식료품은 배달앱에 의존했지만, 그것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은 겨우 시금치 한 단만 도착했고, 어떤 날은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생강이 박스째 도착했다. 기사에게 전화를 걸면 연결되지 않았고, 문 앞엔 서로 섞인 채 놓인 물건들이 낯선 이름표를 달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우리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아마 702호 거겠지.” 그렇게 우리는 생존을 이어갔다. 제멋대로 흐르는 시스템 속에서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야 했고, 먹어야 했다.


매일 아침, 건물 아래 마련된 임시 검사소에 줄을 섰다. 푸른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말이 없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휴대폰의 QR코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녹색이 유지되어야만, 최소한의 이동이 허용되었다. 조금만 늦으면 노란색, 며칠 빠뜨리면 곧장 붉은색. 붉은색은 곧 ‘금지’였다. 모두의 주목과 감시를 받는 이 세상에서 지워진 듯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시기 나는 소왕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산둥성 웨이팡 출신으로, 말수가 적고 성실한 성격이었다. 전 숙소에서 친해진 친구로 혼자 방 찾기엔 돈이 부족해서 같이 있기로 한 것이었다. 나보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그는 무언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하루는 현관 앞에 쌓인 물건을 정리하던 그가 말했다.


“태겸, 이거 당분간 더 안 올 수도 있어. 근처 물류창고 셧다운됐대.”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실제로 며칠 뒤부터는 신선식품 항목이 앱에서 사라졌고, ‘배송 불가’라는 붉은 메시지가 더 자주 떴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은 하나둘 줄어들었고, 우리는 비축해 둔 라면과 쌀을 조금씩 아껴 먹었다.


낮에는 화면을 켜고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다. 학생들의 얼굴은 흐릿했고, 질문은 줄어들었다. 가끔은 나조차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밤이면 뉴스를 보았다. 확진자 수, 봉쇄된 도시 이름들, 고립된 사람들의 인터뷰. 그 모든 정보들이 스쳐 지나가다가, ‘칭다오’라는 이름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하루의 리듬은 단조로웠다. 아침엔 검체 검사, 낮엔 수업 준비, 저녁엔 소왕과 함께 밥을 지었다.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누는 눈빛과 짧은 말들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가 주방에서 조용히 계란을 풀고 있을 때면, 나는 국을 끓였다. 밥을 뜨다가 손이 겹치면,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태겸, 먼저 해.”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거리는 멈췄지만, 주방에서 풍겨 나오는 계란 볶음밥 냄새는 작고 단단한 위로였다. 한밤중,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휴대폰 화면 속 뉴스를 훑어보다가 문득 물었다.

20250919_1357_Cooking Companions_simple_compose_01k5g8p4p3esvttcy14s5mxg4w.png


“너 가족은 괜찮아?”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태겸도 어머니한테 연락 한 번 해.”


그 말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조금 뒤 짧은 답이 왔다.


“괜찮다. 몸 조심해라.”


그날 밤, 오랜만에 마음이 울렁였다. 불 꺼진 도시 위로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스쳐 갔다.


우리의 겨울은 그렇게, 조용한 볶음밥 냄새 속에서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1화기묘한 겨울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