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은 믿음, 새로 여는 시험

by leolee

리란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전에는 서로의 생활을 가볍게 나누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오래 숨겨왔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 보였을 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이런 얘기를 해줬어? 나도 네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듣고 싶었는데.”

그 말속에는 서운함이 아니라, 기다려왔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동안 내 과거를 보여주는 게 두려웠는데, 이렇게 환하게 받아주는 그녀를 보며, 이제는 내가 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기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자연스레 손을 잡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 손길이 우리 사이의 신뢰를 굳히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교내 말하기 시험을 정식으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학생들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동안 나는 말하기와 쓰기 위주로 수업을 해왔는데, 이번엔 시험 문제를 직접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거, 좀 큰일 아닌가요?”


나는 교무실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른 중국인 교사들이 내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선생님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한국인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 주셔야지.”


그 순간 부담이 어깨 위로 얹히는 듯했지만, 동시에 작은 설렘도 느껴졌다. 학생들이 이 시험을 통해 자신들의 실력을 확인하고, 또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우선 시험의 틀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음운변화를 판단하는 발음과 순발력과 이해도를 판단하는 질문 답하기, 그리고 도표를 분석하는 설명하기 세 영역으로 나누고, 난이도는 TOPIK 3~4급 수준을 반영하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 이번 학기 말에는 우리 학교 자체 한국어시험이 생길 거예요. 단순히 성적을 매기려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돼요.”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열심히 해볼게요.” 그 말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웨이신으로 리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학교에서 교내 한국어시험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꽤 부담되지만, 학생들을 위해선 꼭 해내야 할 것 같아.”

곧바로 답장이 왔다.

당연히 잘할 거야. 넌 늘 학생들한테 진심이잖아. 그게 가장 큰 힘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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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메시지를 읽으며, 오늘 하루의 무거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뢰가 깊어진다는 건, 이렇게 서로의 짐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리란과 함께라면, 새로운 도전도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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