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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lee Nov 10. 2024

별이 사라진 밤

벨라의 부모님과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둥잉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둥잉(东营)은 산둥성에 위치한, 중국에서도 석유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도시는 크지 않았지만, 곳곳에 석유 채굴 시설과 관련된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거리에는 석유 산업의 번영을 보여주는 듯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벨라의 집은 둥잉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주택으로,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다.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 산둥성의 황량한 풍경은 마치 내 마음속의 불안과 걱정을 그대로 비추는 것만 같았다. 기차 안에서 나는 여러 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벨라는 긴장한 나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빠, 너무 긴장하지 마. 부모님은 조금 보수적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실 거야." 벨라는 나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래, 하지만 나도 무척 긴장돼. 그분들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실까?"


기차에서 내려 벨라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벨라의 설명을 들으며 집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벨라의 아버지는 엄격한 성격으로, 가족을 위해 항상 희생을 감수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퇴직을 하셨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석유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 오셨고, 남동생의 학비까지 모두 뒷바라지하고 계셨었다. 벨라의 어머니는 다정하고 상냥한 분이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지닌 여인이었다. 벨라의 남동생은 아직 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 집안에서는 막내로서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였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딱딱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벨라의 어머니는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지만, 그 미소 속에는 어딘가 모를 경계심이 느껴졌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들어보자."


벨라의 아버지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벨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미래를 그리며 살고 싶습니다.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냉정하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우리 딸을 행복하게 할 수 있지? 너는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여기에서 높은 월급아닌 상황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지금은 보통 선생님이지만,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할 계획입니다. 벨라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노력만으로 우리 딸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현실을 좀 더 직시해야 해. 너는 지금 당장 우리 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나는 할 말이 막히고 말았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질문에, 나의 이상적인 대답이 허황된 꿈처럼 느껴졌다. 벨라는 나를 바라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와 나 사이에서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 저는 벨라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하나로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외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비웃듯이 고개를 저었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나는 너를 믿고 싶지만, 네가 우리 딸에게 줄 수 있는 건 고작 사랑뿐이잖아."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도 부모로서 딸의 미래가 너무나 걱정돼요."


나는 벨라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벨라와 함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에 너희 둘이 함께 집에 오는 일은 없을 거다. 친구로서 라면 환영할 수 있겠지만, 연인 관계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벨라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벨라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미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집을 나와, 둥잉의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 도착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벨라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 미안해. 내가 더 강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야, 벨라. 너는 충분히 강했어. 내가 부족했을 뿐이야."


다행히 기차역에서 기차는 가까워서 서로를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로의 실루엣은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스쳐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눈이 촉촉해지는 걸 느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한 이 선택은 우리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휴가를 낸 후, 나는 샤오딩과 만나 이 일을 이야기했다. 샤오딩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쌤, 벨라가 이제 칭다오에서 일을 못 하게 됐어요. 벨라 아버지가 꽌시(关系, 인맥)를 이용해서 둥잉의 석유 회사로 옮기게 했대요. 벨라가 이제 칭다오에 오기 힘들 거예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벨라가 더 이상 연락이 뜸해진 거였구나... 아버님의 감시 때문에 이제는 나와 연락할 수도 없겠네.”


샤오딩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벨라는 부모님의 강한 반대와 감시 아래 놓였어요. 위챗도 차단된 것 같고, 전화도 받지 않더라고요. 벨라가 정말 힘들어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벨라와의 관계는 이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나와의 연락을 끊어야만 했던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벨라를 잃었지만, 그녀와의 추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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