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 마태복음 8:20
성경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면, 동물은 굴이나 둥지를 만들어, 비나 추위를 피하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같은 유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도 아주 오래전부터 동굴에서 생활한 것 같다. 그 안에 먹을 것, 즉 식물(食物)을 가져다 놓고 음식을 준비해 섭취하고 불을 피워 추위를 대비하고 안전하게 잠을 잤을 것이다. 머리 둘 곳은 편안히 돌베개든 목침이든 베개를 베고 누워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영어로 shelter라는 말이 있는데, 거처 혹은 비를 피하는 곳이란 뜻이다. 한자어로 주(住)는 사람이 사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주거(住居) 혹은 주택(住宅)이란 말에 쓰이고 있다.
인류가 문명화를 거치면서, 사람은 자연적인 동굴에서 나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주거, 주택, 건축 등의 말이 생겨났다. 집을 짓는 재료를 건축자재라고 한다. 눈이 많이 오는 알래스카에서는 눈과 얼음으로 이글루라는 집을 짓는다. 사철 더운 열대우림 지역에서는 초목으로 대충 집을 짓고 비를 피할 수 있으면 된다. 사막 지대에서는 흙이나 돌로 동굴 모양을 본떠서 거처를 만든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많이 모여 있는 온대지방에서는 집을 짓는 재료가 동서양이 확연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는 집을 지을 때 목재를 주로 쓰고 풀이나 흙을 보조재료로 사용하였다. 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농촌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둥과 서까래 등에는 목재를 쓰고, 벽은 흙으로 바르고 지붕은 볏짚이나 억새풀로 덮었다. 조금 권세나 재력이 있으면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돌은 주춧돌과 온돌용 구들 정도에 채용하였다.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과 그 부속 건물,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누렸던 사찰도 일반인이 짓고 사는 건물과 크기만 다를 뿐, 건축양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재료를 식물(植物) 위주로 집을 지었다. 건축 방법이 자연 친화적이긴 한데, 나무는 돌에 비하면 수명이 짧고, 불이 나기 쉬워 전란이나 방화로 불이 나면 쉽게 소실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목조건물로 된 유적이 거의 없다. 소실되면 중건하는 방법밖에 없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방치되었던 경복궁을 150여 년 전 대원군이 복원할 때는 백두산 지역에서 좋은 금강송을 운반하여 사용했다고 하고, 몇 년 전에 불난 남대문을 복원할 때는 강원도 강릉이나 삼척 인근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베어 와서 썼다고 한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문명화 이후에는 돌이 중요한 건축 재료였다. 서양에서도 처음에는 초목으로 지은 거처를 만들었겠지만, 그들은 초가집의 내구성이 좋지 않음에 착안하여, 돌로 된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동양에서는 나무나 풀 등 탄소가 주축인 식물(유기물)을 건축재로 썼다고 하면 서양은 광물(무기물)인 돌에 착안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돌을 채취하고 운반하고 다듬어 건물을 세우는 데는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하였다. 육면체로 돌을 다듬고 쌓아 올려 다층의 집을 지었다. 교회나 궁궐같이 층의 높이가 큰 건축물도 축조하였다. 돌을 연결하여 아치형 출입문을 내는 건축기술도 개발하였다. 출입문이나 창틀을 금속으로 짜기는 조금 후세에 이루어졌을 것이고 유리로 창문을 만들고 그 유리에 채색하는 착색유리(stained glass) 기술도 교회 건축에 채용하였다. 이렇듯 서양의 건축물은 대부분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돌집은 화재가 잘 일어나지 않고 사람이 힘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오래간다. 로마, 파리, 런던 등에 오래된 문화유적이 아직도 건재하고, 도심이 수백 년 동안 잘 보존된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화가 늦게 시작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건축에서 유럽 흉내 내기가 유행하였다. 미국 의회 건물이나 오래된 대학의 건물은 유럽의 건축물을 모방한 듯하다. 일본은 새로 짓는 관공서 건물을 목재로 된 건물이 아닌 유럽식 돌집으로 지었다.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의 서울에서도 조선총독부 청사나 서울시청 건물 등을 지을 때 서양식 돌집으로 지었다. 해방 후 조선총독부는 중앙청이란 이름으로 정부 청사로 쓰였다가, 언젠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해체되었다. 서울시청 건물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역사 보존이란 명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베트남은 옛날의 사이공, 지금의 호찌민시에 월남 시절의 건물은 물론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은 건물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의 교토대와 도쿄대를 방문했을 때 교정의 오래된 교사(校舍)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필자가 대학교에 다닐 때 드나들던 교사와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학을 새로 지을 때 유럽을 모방하고, 우리의 관립대학은 일본의 유명한 대학의 교사를 모델로 건물을 지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돌을 건축 재료로 쓰지 않는다. 대부분 돌 대신 시멘트를 쓰고 뼈대를 철근이나 철강 빔으로 보강한다. 시멘트(cement)는 조석(粗石) 또는 모래라는 말이 어원으로 서양 이름인 사이먼(Simon) 혹은 시몬과 같은 어원이다. 어떤 암석 가루를 물에 개어 두면 나중에 굳어서 돌과 같이 딱딱해지고 건축 재료로 쓸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 암석을 땅에서 채취하고 가공하여 널리 쓰이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회(灰)라고 하여 무덤에 매장할 때 물에 개어 부으면 지하수가 스며드는 것을 막는 용도로 쓰였다. 시멘트는 동양에 소개되면서 양회(洋灰)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산간 지역에 이 조석(粗石)이 많이 산출되어 인근에 양회 공장을 짓고 시멘트를 제조하여 도심의 건설 현장으로 운송하였다. 그런 회사 이름에도 양회라는 말을 썼다.
물 등으로 반죽한 시멘트가 굳으면서 생기는 단단한 물체를 콘크리트(concrete)라고 부르는데, 일상에서는 시멘트와 혼동하여 쓰인다. 반세기 전만 해도 집을 지을 때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엮어 놓고, 한편으로 지상에서 시멘트에 자갈 혹은 모래를 물과 함께 섞은 다음 그릇에 담아 사람이 등짐을 지고 올라가서 굳기 전에 필요한 데다가 붓는 방법을 썼다. 시멘트가 굳어 콘크리트가 되는 기간을 양생 기간이라고 하였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 다음 층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시멘트를 별도의 공장에서 배합하고 특수 트럭에 옮겨 시멘트가 굳지 않게 계속 교반(攪拌)하면서 건축 현장에 도착해서 기계로 필요한 데에 시멘트를 굳기 전에 붓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이 차량을 보통 레미콘(remicon)이라고 부르고 있다. 레미콘은 ready mixed concrete의 약어로 드물게는 트럭믹서(truck mixer)라고 불린다.
요즈음은 시내에서 레미콘 차를 별로 볼 수가 없다. 건설 공법에 패러다임 변화가 생겼다. 재건축하는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도 레미콘 차에서 시멘트를 붓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없다. 대신에 높게 세워진 타워 크레인으로 장난감 레고 같은 부품을 열심히 올리고 조립하는 풍경이 보인다. 미리 공장에서 시멘트를 주형에 부어 응고시킨 쪼가리들을 갖다가 붙이는 공법이 일반화된 모양이다. 이런 쪼가리들을 콘캐스트(concrete cast) 혹은 precast concrete라고 부른다. 또 요새 아스콘이라는 말도 들린다. 아스팔트 콘크리트(asphalt concrete)의 줄인 말이다. 도로를 신설하거나 기존 도로를 보수하기 위한 포장 시에 사용되는 골재 95%에 아스팔트 5%를 정도 섞은 혼합물을 말한다. 아스팔트는 석유 곧 원유를 휘발유, 경유, 등유 등으로 정제하고 남은 끈적끈적한 잔사유이다.
이 시멘트는 우리나라에서 경제개발 시기에 다리, 도로, 아파트를 건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부터 국민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시작하는데 아파트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아파트 건설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4~5층 아파트가 대세였는데,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연탄아궁이로 난방하는 방식이었다. 무리하게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다가 건설 도중에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아파트 건설 기술이 발전하고 건축자재가 좋아지면서 1980년대부터는 아파트가 12층 정도로 높아졌고, 요즘에는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옛 아파트는 철거되고 지금은 40층 정도 되는 높이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등짐으로 올렸던 시멘트는 레미콘 차로 실어와 자동으로 필요한 데에 부었다. 요즈음은 precast concrete 등의 건축자재를 전기의 힘으로 작동되는 타워 크레인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적재적소로 운반한다.
레미콘이나 타워 크레인 등에 사용되는 동력은 전기인데,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연료에서 뽑아낸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의 근원은 식물을 통해 온 태양에너지이다. 아직도 사람(인부)의 손재주가 필요하고, 인부뿐만 아니라 건설 프로젝트 감독자나 엔지니어도 자기 집이나 함바집에서 먹은 음식의 힘으로 일하고 있다. 그 음식의 원천은 식물의 광합성작용이다. 아무리 과거 서양의 건축물이나 현대의 건축물이 돌 또는 시멘트라고 하는 광물로 지어져도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이렇게 시멘트가 현재 건축 재료의 대세가 되다 보니 과거 목재로 지은 문화재를 복원할 때나 옛날 양식의 건물을 새로 지을 때도 시멘트를 쓰고 있다. 시멘트를 써서 복원했다는 광화문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건축자재 구하기가 쉽고 건축비도 적게 들 터이니 자연스러운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멘트로 유적 복원의 부적절성과 단점을 지적하는 조언을 들을 필요는 있겠으나 건축에 관한 기술의 흐름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집을 지을 때는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옛날에 나무와 풀로 집을 지은 우리나라에서도 기둥 밑에는 튼튼하게 주춧돌을 놓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초(柱礎)를 반석(盤石) 위에 놓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漲水)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데,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집에 부딪쳐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된다(마태복음 7:24~27). 동양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말이 있다. 모래 위에 누각을 지으면 홍수가 나서 밑의 모래가 쓸려나가고 종국에는 누각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바닷가의 뻘밭을 땅으로 메운 간척지에 높은 건물을 지을 때는 철제 파일을 암반까지 때려 박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현대 건축기술에 의하면 모래는 오히려 좋은 기초가 될 수 있다. 서울 송파구 등 한강 변에 지은 아파트는 대부분 모래 위에 지어졌다. 큰 건물 밑에 있는 모래는 잘 다져지기만 하면 건물의 하중을 지반으로 고르게 잘 전달하여 흙 위에 지은 건물보다 오히려 튼튼하다고 한다.
의식주 중에서 먹고 입는 것이 생명에 중요하고 옛날에는 이 문제로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였다. 국가 경영의 제 1과제가 국민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의와 식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주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주택은 음식이나 의복에 비해서 단가가 높아 빈부에 따라 주택의 종류에 차이가 크게 난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지만 쉬운 해결책이 없다. 거기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집이 없거나 부실한 저소득층을 위해 집을 신축해 주거나 개량해 주는 국제적인 봉사단체로 '해비타트(Habitats) 운동‘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카터(Jimmy Carter, 1924~ )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카터는 단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카터 부부는 해비타트 운동 이외에 저개발국의 민주적 투표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이들 부부의 장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