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 밥밥 Aug 23. 2024

식구가 많다는 것의 의미(1)

너희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아빠는 주로 명절마다 사달이 났다. 알코올 중독이 깊어질수록 아빠에게 여러 합병증이 생겼다. 중환자실에서 연휴를 보내고 퇴원하기를 몇 해를 반복했다. 여러 번 증상이 있었을 텐데, 그는 도망치기 바빴다. 자신의 건강으로부터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비틀 멀어진다. 술기운에 힘들 텐데 그 먼 길을 열심히도 갔다. 어느 설날에 한바탕 피를 토하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는 아빠의 가족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긴 휴일에 맞춰 자신의 아들, 형제, 오빠의 병문안을 왔다. 그리고 아빠의 보호자들에게 다양한 말을 했다.


아빠가 이렇게 아프도록 너희는 뭘 했니.

왜 술 마시는 것을 말리지 않았니.

니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팔자려니 하렴.

너희 때문에 아빠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니.




아빠 이제 술을 끊어야 해.

그 힘든 공사판 일을 하는데, 어떻게 하루 한병도 안 마시니.

그럼 일을 나가지 마.

너희들은 누가 먹여 살리니.

우리가 곧 취업할게. 지금은 알바라도 해볼게.

그거 가지고 어떻게 사니.

어떻게든 살겠지. 제발.




알코올 중독자의 두 보호자는 그들의 말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성공해 보겠다고 서울로 대학을 다녀보겠다는 핑계로 중독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간 한 보호자는 교복을 입고 그 큰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다른 보호자에게 한없이 죄스러울 뿐이었다. 응급실의 의사는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수술이고, 성공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차디찬 표정을 하고 수술의 위험함에 상세히 설명하는 의사가 싫었다. 동생을 다독여주기는커녕 울지 마, 울면 아빠가 더 힘들어 해라며 그들과 같은 못난 말을 해버렸다. 할머니가 바라던 대로 엄마가 되어주지는 못해 미안했다. 머릿속으로 상상 가능한 최악의 경우를 모두 생각해 냈다. 영영 누워 있으면, 병원비는. 학교는 관둬야 할까. 당장 집에 돈이 얼마나 있었지. 그래도 작은 회사에는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어설픈 계획을 뒤로하고 아빠가 중환자실로 옮겨갔다.


알코올이 해독되기 전까지는 수술을 할 수 없다. 졸업을 앞둔 동생은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빠가 퇴원을 할 때까지 병실을 지켰다. 간병인이 항상 상주하며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많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병원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 소리를 지르면서 소란을 피우는 환자들이 많다. 아빠 역시 그랬고, 간호사는 환자를 침대에 묶어놔야 한다고 동의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사지가 침대에 묶여있는 아빠를 보고 고모는 오열했지만 나는 아빠에게 도움 되는 치료라 믿었다. 아빠의 팔다리가 고정되어 있는 동안은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알코올 중독 금단 현상으로 환각, 환시 증상이 있었다. 딸이 간호사인줄 알고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하다가도, 아빠 나 간호사 아니야라고 답을 하면 그러게 네가 왜 여기 있냐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가 본인의 저항이 소용없다고 깨달았을 즈음에 얌전히 있겠다고 간호사와 약속을 했다. 그는 침대 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손목과 발목엔 푸르스르함이 남았다. 그는 침대에 있으면서도 종종 노동을 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콘크리트를 다 쳤다고, 미장은 어떻게 하겠다고 했다. 현실에서는 술에 취해 잠에 빠져있던 그였지만, 그의 세상에서는 아직 성실한 노동자였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병원이요. 지금이 낮인가요 밤인가요. 아침이잖아요. 몇 년생이시죠? 68년생이요.

힘겹게 현실로 돌아온 아빠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을 앞둔 밤, 내과 병동에 경찰이 왔다 갔다. 아빠의 침대에 대각선에 있던 아저씨가 병원에 폭탄이 있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그도 아빠와 같은 류의 사람이었고, 내게 수술에 대해 설명했던 그의 냉정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했다. 그들은 보호자들의 악몽이 일터일지도 모르겠다. 보호자도 환자도 탓하지 못하고 치료에 임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 아닌 제삼자들이었다. 그러다 잠에 들기 위해 보조 침대에 누워있던 중 아빠는 본인이 내 자리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의 고집은 세상 최고다. 오랜 말다툼 끝에 병실에서의 소란이 곤란하여 결국 침대를 바꾸었다. 얼마 안 가 바이탈을 체크하러 온 간호사에게 혼나고 민망해하며 원위치했다. 그렇게 미안했으면 술을 마시지 말지.


얼굴이 붉어진 나는 아빠에게 심술이 났다. 작은 아빠가 아빠가 아픈 게 우리 잘못이래라고 했어라고 일렀다. 아빠보다 아빠의 가족들의 말들이 나를 상처입혔다고 생각했다. 그 새끼가.. 아빠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못된 마음에 부린 투정에 수술복을 입은 아빠가 편을 들어줬다. 내 어리광은 이기적이었다. 또 싸움이 날까,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음이 풀린 나는 겨우 잠에 들었다.

이전 04화 비의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