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stavo kim 김성한 Oct 27. 2024

미국대학 입학을 도와준 친구들

당시 브라질의 화폐가치가 떨어져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1990년대에 브라질에서 미국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업가나 정치가의 자녀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미국 유학이란 꿈을 버리지 않았다. 1980년대 영화 중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가 있었다. 로빈 윌리엄이 선생님으로 나오는 영화로 미국 명문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나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소년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미국 명문대학에 꼭 가 봐야겠다는 꿈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유학을 위해서 필요한 토플 점수와 GRE라는 입학시험이 있었다. 다행히 토플은 열심히 노력해서 550점 커트라인에 턱걸이했지만, GRE가 걱정이었다. 이 시험에서 Verbal이라는 영어시험과 Quantitative라는 수학 시험이 있었는데, Verbal은 기본 점수를 맞았는데 수학 시험점수가 잘 안 나왔다. 대부분 한국학생들은 수학에서 만점 가까이 맞고 입학한다 던데, 나에게는 수학이 유난히 어려웠다. 특히 나누기를 잘 못했다. 기본적인 이해력이 풍부하지 않으면 미국식 생활 수학을 풀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서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수학을 해왔던 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설마 내가 나누기를 못할 수 있나 하고 몇 차례 생각해 보았으나 실제로 나는 곱하기를 나누기로 역산했지 나누기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등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사서 주위 친구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야 했다. 나누기를 못하니까 실용 수학을 할 수가 없어 800점 만점에 500점대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리 초등학교 산수 과목을 공부한다고 해도 나 혼자 이해할 수가 없어 개인 교습이 필요했다. 주위 사람을 수소문해 보아 두 사람을 찾았다. 당시 나의 절친 상원과 친구 Mika였다. 상원은 브라질 이민 당시부터 나를 도와준 참 고마운 친구다. 내가 말도 한마디도 못 할 때 학교 등록에서 우리 집안일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 준 친구다. 가정 불화로 집안에서는 문제아였지만, 나에게는 참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해 우리 집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상원은 가출한 상태여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 집으로 왔던 것이다. 


상원은 후에 자신의 아이를 낳아 준 자신의 여자친구도 집안에 소개해 주지 못한다고 나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이었다. 내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당시 나누기를 못해 크게 실망하며 거의 포기 상태에 있을 때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구스타보,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해보자. 산수는 기본과 원리를 이해하면 쉽게 풀릴 수 있어. 너는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아 기본이 모자라 지금은 어렵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초등학교 교과서를 다시 사서 하나부터 다시 해보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포기하지 말고 힘내.” 


그렇게 나를 도와주던 상원은 내가 미국 유학을 하고 있을 당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미국대학 공중전화에서 상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펑펑 울어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준 적도 있다. 그리고 훗날 상원무덤을 찾아가서 인생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며 슬퍼하였다. 상원이 나를 도와줘 미국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내가 성공하면 꼭 상원을 미국에 초청해 함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려 했는데… 아버지의 죽음 후 두 번째 겪는 이별의 슬픔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