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를 두 개 받고 난 후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우리 학교에서는 탤런트 쇼라고 하는 전통 파티가 있었다. 각자 자기의 장기 자랑을 하여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인기상과 최고상을 주는 이벤트다. 나는 랭귀지 스쿨에서 했던 것처럼 탤런트 쇼에 가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F학점의 슬픔이 너무 커 나갈까 말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묘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나의 상황에 어울리는 뭔가의 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F학점을 받은 나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 쇼를 할 자신이 없어. 싸구려 위스키를 또 물 마시듯 마신 다음 나의 장기인 색소폰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에 올라가 보니 나에게 F학점을 준 교수도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색소폰을 불기 전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샌디에이고 명문대에서는 유일하게 단 한 명만이 F학점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지요 그 영광의 주인공이 누구 인지요? 그건 다름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과 건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중간고사를 무사히 끝낸 것과 더불어 저의 F학점을 축하하며! 그러나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 싸구려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셔 제대로 음악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하면서 일부러 술 취한 척 색소폰을 거꾸로 불기 시작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앞뒤 맞지 않게 헛소리를 계속 퍼붓다가 ‘Over the rainbow’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엉뚱한 나에 연설에 자지러지게 웃으며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내 연설이 끝난 후 학과장인 유명한 한국 정치학 교수인 스테판 헤거드(Stephan Hagard)는 학생들과의 만찬 파티에서 살짝 나에게 찾아와 "너의 연설이 참으로 재미있고 인상 깊었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세계적인 수제들이 모인 이 대학에서 틀에 짜인 시스템에서 공부하는 이들에게 유머스럽게 풍자한 나의 연설이 특이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신입생의 30%가 낙제를 받아 낙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난 그들 중 하나로 1순위 낙제 후보 학생으로서 학생들의 최고 고통을 낙관적으로 풍자한 것이 감동을 일으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