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에는 내 인생 최고의 레이스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코치하고 있는 선수를 가이드하여 마라톤에 참가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었는데 승낙을 받아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맹인선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코치인 내손에 줄을 묽어서 시합에서 같이 완주하는 계획이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벅차서 그 기쁨을 어떻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했었다. 그 이유는 나와 맹인선수의 이번 마라톤 출전이 이곳 역사상 장애인이 처음으로 운동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대회를 위해서 열심히 훈련하였고 시합당일에는 우리를 응원 나온 관중들이 광장에 꽉 차 있었다. 땅 하는 소리와 경기는 시작되었고 프로선수들과 같이 출발하였다. 일반적으로 동호인이나 장애인은 프로선수뒤에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날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앞에서 출발했다. 일본신문 기자들도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취재를 하였다.
시내를 가로질러 달렸다. 가는 곳곳마다 시민들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다. 나는 이제까지 이십 번 이상의 마라톤대회를 세계 곳곳에서 출전해 보았지만 이토록 열정적으로 응원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맹인선수는 앞이 전혀 안보였기 때문에 얼굴에 검은 안대를 하고 내가 인도하는 곳으로만 달렸다. 마라톤의 최대 고비인 삼십 킬로 이후부터 힘이 빠져 고생을 좀했지만 우리는 결국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승점을 세 시간 사십 분대에 골인했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 격려하며 기운을 냈으며 이선수는 안대 안에서 눈물이 연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 또한 감동하여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골인지점을 지나자 경기장 안에 있던 시민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며 우리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그 함성이 얼마나 크고 웅장 했던지 나는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우리 주위에 기자들이 몰려들어 이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인터뷰를 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선수가 운동경기에 출전한 감동적인 순간, 그 중간에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