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란 존재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나는 아쉽게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미국 유학을 가기 전 만두와 청바지를 팔던 13년 동안 나는 어머니와 둘이 생활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같이 일 하고 이익을 나누고 비즈니스 구상 역시 같이 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생활이 나아졌을무렵 내가 어머니에게 용돈 100만 원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나를 보면서 나의 아픈 허리가 어려서부터 만두 박스를 지고 다녀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용돈으로 드린 100만 원을 나에게 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스타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무거움 짐을 지지 말고 이 돈으로 택시를 타고 다녀." 이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습관이 들었지만 이때 하신 어머님의 말씀 때문인지 무거운 짐이 있으면 꼭 택시를 타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브라질생활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하러 갈려고 할 때 어머니는 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미국 유학 당시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 주셨다.
“내가 너의 미국 유학생활을 위해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이 시편 1편 1절을 너에게 응답하셨다. “악인을 좇지 아니하며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는 이가 될지어다.” 그리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아주 많은 물이 넘쳐흐르는 큰 강을 보여 주셨다. 물은 세례를 하며 축복받은 곳이므로 너는 앞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 하나님은 너와 너의 형을 크게 쓸 거야.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하여라.”
나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을 부러워하며 삶의 방향을 정하였다. 내가 만두를 팔던 시기에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부모님을 잘 만나 좋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미국 유학을 하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미국 명문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명문학교를 다니는 것이 나의 꿈이었는데, 나는 직접 돈을 벌어서 10년 후에 그 꿈을 이루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다국적 기업의 CEO나 부자가 된 거상들이다. 비록 당시에 나는 만두가방을 들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만두 사세요”가 나의 삶의 전부였기에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멋진 기업가가 되어 양복을 입고 다녀야지 하는 생각에 일에 지친 몸을 이끌면서 공부했다. 결국은 다국적기업에 취업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벌면서 나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효도할 수 있는 어머니가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2010년 내가 박사학위를 받던 날 내가 다니던 연세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에 학위수여식 및 만찬이 있었다. 5년 동안 고생해서 받은 학위 라 이 파티는 내 인생 최고의 파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5년 전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할 때 색소폰을 불고 장기 자랑을 해서 우리 과 학생들은 내가 학위 연설을 무엇을 할까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수십 명 앞에 나가 처음으로 진지하고 슬픈 연설을 하였다.
“나는 박사가 되면 인생 최고의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나는 브라질에서 왔고 우리 가족들은 브라질에서 있어서 나는 오늘 박사학위의 영광을 브라질의 계신 어머님에게 돌리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박사가 되기 1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영광을 돌릴 사람이 없네요. 전 진정한 박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브라질에 돌아가서 어머님에게 조금이라도 효도나 더 할걸 하고 후회가 되네요. 여러분, 박사학위를 받아 참 기쁘지만 어머니보다 더 소중한 분은 없습니다. 저는 부자, 박사, 교수 같은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살아 계신 분이 제일 부럽네요. 여러분 어머니에게 효도하시고 맛있는 거 많이 사 드리기 바랍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기쁜 연설을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아서 아내나 자녀에 대한 애착은 잘 모르나 어머니의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우리 어머니는 신앙이 없던 나에게 교회를 강요하지 않았고,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셨다. 어머니는 73년을 건강하게 사시다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말을 형한테 듣고 바로 브라질로 달려갔다. 어머님은 혼수상태였고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다. 결국 며칠 후 도착한 누나들을 보고 어머님은 세상을 떠났다. 평소에 어머님이 건강하셨기 때문에 어머님의 죽음에 대해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박사학위식에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서 수여식에 참여하시고 식구들도 만나게 할 계획이었다. 이제 경제적 여유가 좀 생겨 어머니에게 작은 집이라도 사드리려고 했는데. 미국 유학으로 1999년 이후 내가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매년 한 번씩 브라질을 방문한 것뿐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나서는 어머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때만큼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루과이의 국경도시 콜로니아(Colonia)에서 몬테비데오(Montevideo)를 가는 버스를 탈 때 옆자리에 우루과이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자리가 많지 않아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옷을 잘 차려입은 멋쟁이였다. 아주 오래된 라디오를 손에 들고 계셨다. 하지만 나이가 많으셔서 그런지 기력이 없어 보였다. 나이가 있으신데 혼자 장거리 여행을 하시는 것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그 순간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어머니가 이 할머니 자리에 앉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나더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2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슬플 수가 있을까? 세상에 이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에 있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머니가 이렇게 옆에 앉아 계시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나의 하나님은 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아무 예고도 없고 데려가셨을까? 왜 나는 바보같이 어머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돈을 많이 벌고 교수가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 뭐 하나?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 옆에 안 계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제저녁에도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어머니 품 안에 안겨 나와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허무하게도 꿈에서 깨고 말았다.
2012년 6월, 우루과이 시내 어느 호텔 응접실 한구석에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눈물이 흐른다. 나는 벽을 보고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어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아무리 눈물을 감추려고 하여도 차마 그럴 수 없다. 어둑한 창가에서 갑자기 햇살이 나에게 향했다. 아침에 찬물로 샤워를 해서 좀 추웠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려고 햇살을 보내 주셨을까?. 하나님은 내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계시겠지!. “내 삶의 방향을 항상 주관하시는 하나님, 도대체 나한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왜 나에게 이러한 슬픔과 역경을 주시나요?”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에서 역경을 극복하게 하시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도 만드셨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도 나에게 항상 하나님이 나를 모세와 요셉, 다니엘과 비교하시고, 언제인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쓴다고 말하셨는데 그게 사실일까? 나는 이제 나이도 먹어가고 삶에 지쳐 있으며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나는 이미 하나님에게 간청을 했었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계실 때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 어머니에서 몇 년 만 삶을 더 달라고 말이다. 나는 딸린 식구도 없고 하고 싶은 일들도 거의 다 해보고 세상 구경도 많이 해 더 이상 한이 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나요? 저는 이제 삶의 방향을 잃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은 저와 항상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회하며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삶을 위해 직진하며 살려고 합니다. Please show me the way. 저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제가 앞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나머지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게 살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삶이 있을까요? 사회에 봉사하며 살면 되나요? 제가 이런 슬픔을 겪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나요?”
꿈에서 어머님을 보면 그리움과 아쉬움에 통곡하면서 깬다. 어머님의 죽음은 내 삶의 너무나 큰 사건이어서 지금도 그 사실을 수긍할 수 없다. 나의 삶의 방향도 바뀌어야 했다. 어머님의 대한 여운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남은 삶은 어머니가 하시고자 하던 일을 하면 살고자 한다. 그래야만 나의 슬픔이 수그러질까?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걸인 선교 등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셨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난을 유산으로 선물해 주셔서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삶의 힘과 방향을 찾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신앙을 물려주셨고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