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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Nov 08. 2022

옥탑방 화실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이사



복덕방에는 할아버지 대, 여섯이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복덕방 주인은 낮술을 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두꺼운 장부를 뒤적였다.

"여기 옥탑방인데 조용하고 좋아 누구 간섭도 안 받고,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워서 그렇지 이만한데도 없어 화실 하기엔 그만일걸."

'젠장 그 정도면 최악의 조건인데 뭐가 좋다는 말인지 돈도 없는데 계약을 해야 하나'

"방이 커서 한쪽에 작은 침대 하나 놓고 나머지는

화실로 쓰면 금상첨화지."

한 번 더 밀어붙였다.

"방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삼층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은 술 마시고 계단 하나만 잘못 디뎌도 최소한 중상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좁고 녹슬어 다리가 후들거렸다.


옥상에는 항아리 몇 개와 온갖 꽃들을 심어 놓은 화분이 있었는데 여름 땡볕에 시들시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집주인은 꽃 욕심은 많고 꽃을 돌볼만한 부지런함은 없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과 가까워 기차 지나가는 소음과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올 때 안내 방송도 또렷이 들리는 그야말로 불면증 걸리기엔 최상의 조건이었다.


한동안 인간의 숨결이 없었는지 방바닥에는 바퀴 벌레가 기어 다니고 더러는 쥐똥과  말라죽은 잠자리도 보였다.

내 눈치를 보던 주인아줌마가 무안한 듯

"도배장판 하면 깨끗해."

뚱뚱한 주인은 계단 올라오기 힘들어서, 옥상에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 편하게 살라고 했다.

복덕방 할아버지 말대로 이 보증금에 이만한 방도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했다.


이사 오고 첫날 옥상 화분에 물부터 주었다.

땡볕에 열사병으로 인간 목숨 하나 스러지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무결점의 꽃 한 송이가 지는 것은 너무 슬프고 억울한 일이다.

햇빛 가리개까지 해주자 신기하게도

다음날부터, 꽃들이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그 이름에 맞게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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