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옥야식당
옥야식당은 안동에서 가장 큰 중앙신시장 골목에 있다. 50여 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전통의 국밥 노포다. 창업주 할머님이 정육점을 운영하며 국밥을 판 게 시작이었다. ‘안동시영할매선지국밥’이라는 상호와 ‘시영식육공판장’ 간판이 남아 옛 흔적을 보여준다. 선지와 다양한 한우 부위를 푸짐하게 담은 선짓국밥이 대표 음식이다. 취향에 따라 선지를 뺄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시장통 국밥집이다. 술은 팔지도 않고 마실 수도 없다.
영업시간은 매일 08:30~19:00이며 명절 당일 휴무이다. 재료 소진시 조기마감한다. 선지국밥(10,000원) 단일 메뉴이며 포장 판매(45,000원)도 한다.
선짓국밥 식재료인 소고기(선지, 갈비뼈, 등뼈, 잡뼈, 갈비덧살, 양지뱃살)는 대부분 국내산(한우)을 사용한다. 양지는 국내산(한우)과 미국산을 섞으며 아롱사태는 미국산이다. 쌀, 배추, 파, 마늘, 무도 국내산이며 고추가루는 국내산과 중국산을 섞어 사용한다.
2024년 11월 7일 오전 7시 40분쯤 옥야식당을 찾는다. 마침, 찾은 날이 2, 7일마다 오일장이 열리는 안동 신시장 장날이다. 시장 밖 인도는 이른 시간 좌판이 깔려 장보러 나온신 어르신들이 많이 오갔지만, 시장 안은 아직 한산하다.
옥야식당 간판 아래 불빛이 환하다. 하얀 밑단과 푸른 몸통의 배춧잎이 쌓여있다. 일부는 솥 안에서 날것의 물성을 잃어가고 있다. 삶아서 한숨 식히는 소고기와 큼직한 양은솥에서 폴폴 김이 오른다. 허연 김 사이로 이모분이 아스라이 보인다. 이모분 곁으로 다가선다. 구수한 향 틈으로 매운 기운이 코를 후빈다. 눈으로 확인한다. 양은솥 안에 양지뱃살, 선지, 무 등속이 삶아지고 있다. 고춧가루 기운을 머금은 국물이 먹음직스럽게 붉다.
옥야식당은 오전 8시 30분에 영업 시작이다. 이모분들이 씻고, 데치고, 끓이고, 손질하느라 바쁘다. 영업 전 국밥 만드는 수고스러움을 살핀 후 장날 구경하러 시장 밖으로 나간다.
옥야식당은 2015년 11월 처음 찾았다. 당시 선짓국밥 가격이 8,000원이었다. 2016년 안동 여행 때 연세 많으신 창업주 할머님이 식당 한쪽에서 가위로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19 이후 할머님은 식당에 나오시지 않는다고 한다. 선짓국밥에 밥을 따로 내줬고 밑반찬으로 섞박지와 배추김치, 고추지가 함께 나왔다.
신시장 육교 양쪽 인도와 골목에 상인들이 빈틈없이 좌판을 깔았다. 장 보러 오시거나 구경하러 오신 분들로 길이 비좁다. 장 구경을 하고 8시 30분 옥야식당 영업 시작 시각에 맞춰 다시 찾는다.
신시장 안쪽 거리도 사람들의 이동이 늘었다. 식당 앞 이모분들이 고기를 손질하고 주문받은 선짓국밥을 뚝배기에 담는다. 자세히 보기 위해 양은솥 앞 이모에게 걸어간다. 이모분은 뚝배기에 손질해 둔 갈비덧살, 양지 뱃살, 양지, 아롱사태 등을 깔고 대파, 배추 등 건더기를 넣은 후 선지를 올리고 커다란 솥에 팔팔 끓여낸 육수를 국자로 퍼 몇 차례 토렴한 후 국물을 퍼 뚝배기에 붓는다. 투박하고 푸짐한 선짓국밥이 완성된다.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갈수록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늘고 이모분들의 손놀림은 바빠진다.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영업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식당 내부는 손님들이 많다. 가로로 길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안내해 준다. 1인석 좌석이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좌측 옆에 어르신 한 분이 식사 중이시다.
잠시 후 꽃 그림이 그려진 둥그런 양은 쟁반에 하얀 쌀밥, 뚝배기에 담은 선짓국밥, 김치겉절이, 아삭한 깍두기 등 밑반찬을 차려 내준다. 찬으로 늘 나왔던 고추지 대신 양파절임이 나왔다. 밑반찬은 단출하지만, 국밥 한 그릇과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함께 내준 알싸한 다진 마늘, 칼칼한 고춧가루 등은 취향에 맞게 넣는다.
숟가락을 들고 선짓국밥을 훑어본다. 소고기 배춧국에 선지를 넣은 국밥이다. 검은색 바탕 안으로 기름 동동 뜬 국물의 붉은 기운이 또렷하다. 푸름과 하얌이 수그러든 대파, 형태가 다른 진갈색 소고기, 검붉은 선지 등 건더기들이 큼지막하게 빨간 국물을 덮었다. 푸른 고추도 듬성듬성 보인다. 배춧잎은 보이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헤집는다. 소고기 건지 들과 색 바랜 배춧잎이 푸짐하게 드러난다.
첫 숟가락이 향한 건 현무암처럼 구멍이 팬 선지였다. 선지를 뚝배기 가장자리로 밀고 날을 세워 찌른다. 화강암의 단단함은 아니지만 숟가락을 잡은 손에 제법 저항을 주며 몸통을 허락한다. 한술 떠먹는다. 어금니에 콕 박히며 몸 안에 품은 구수하고 진한 국물을 왈칵 쏟아낸다. 뒤이어 고소하고 짙은 풍미가 혀를 감친다. 몇 번 같은 숟가락질이 반복되며 선지는 사라진다.
국물과 건더기를 크게 떠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펄펄 끓는 정도가 아닌 뜨뜻한 국물의 온도가 ‘알맞음’을 입과 뇌에 전달한다. 한우 살코기, 선지, 뼈 등으로 푹 우려낸 맑은 육수에 배춧잎, 대파, 무, 고추, 고춧가루 등을 넣고 끓여낸 균형 잘 맞은 국물이 얼근하고 산듯하다.
색은 바랬지만 흐물거리지 않는 대파가 씹힌다. 달금하다. 국물에 단맛을 고스란히 풀지 않았다. 씹을수록 단맛이 입안을 은은하게 감돈다.
배춧잎은 국물과 온도와 타협한 시원함을 간직한 보드라운 질감으로, 소고기는 결 따라 다른 질감과 구수함으로 어금니와 혀를 놀린다.
따끈한 조밥을 먹고 김치 겉절이를 입으로 가져간다. 아리고 환하다. 제피를 넣어 담근 겉절이다. 국물의 시원함과는 다른 상쾌함이다. 물컹하지 않은 깍두기도 신맛을 보탠다. 양파절임은 고추지의 삭힌 맛을 대신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반쯤 남은 밥을 국밥에 넣는다. 다진 마늘과 약간의 고춧가루도 넣고 휘휘 젓는다. 깊고 시원한 국물에 알싸하고 칼칼한 매운맛의 풍미가 국물을 물들이며 결이 다른 국밥의 맛을 완성한다.
수저질이 바빠진다. 주문은 끊임없고 들고 나는 손님들과 포장 손님들로 식당 안은 북적인다.
혼자 온 안동 어르신 한 분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신다. ‘황제표’ 상호의 양은 쟁반에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국물과 밥 한 톨 남기지 않은 검은 뚝배기에 남김없이 비운 찬 그릇들과 밥공기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단골 현지 분이 보내는 맛깔남의 표현이다.
다사로운 뚝배기를 두 손으로 잡고 마지막 국물을 훌훌 넘긴다. 쟁반 꽃 아래 ‘감사합니다’란 글씨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손님에 따라 가격, 노포의 위생, 종업원의 불친절 등 불호가 있는듯하다.
2015년 처음으로 옥야식당을 찾은 후 해마다 안동 여행을 오면 선짓국밥을 꼭 챙겨 먹었다. 인생 최고의 국밥이어서가 아니다. 좋은 식재료를 찾아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고 푸짐하게 건더기를 담은 국밥 한 그릇에서 장터 인심을 맛봤기 때문이다. 나그네에겐 늘 미더움과 익숙한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었고, 수수한 밥상의 만족감과 넉넉함은 양은 쟁반 상호처럼 ‘황제표’ 밥상과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