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집’은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2번 출구로 나와 500여m 직진 후 계종빌딩 방면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100여m 걸으면 나오는 조그마한 식당이다.
12시 조금 넘어 식당 건너편에 다다른다. 하얀 간판에 검은색으로 쓴 ‘국수집’ 글자가 도드라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식당 창에 착한가격 모범업소 엠블럼이 붙어 있다. 그 위로 분홍색으로 크게 쓴 ‘고기국수’가 눈에 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꼼꼼히 읽는다.
“저희 국수집은 어머니 혼자 소소히 운영하는 사랑방 같은 작은 점포입니다. 욕심 없이 음식을 나누자는 마음이 전해진 건지, 최근 저희도 모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분들께 소개가 되어 갑작스럽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많고, 많은 분들을 모시기에 턱없이 협소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조금 느리고 대응이 미숙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처음과 같은 정성과 맛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국수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문을 다 읽고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4인용 식탁 세 개와 2인용 식탁 세 개가 놓인 작은 식당은 점심시간이라 손님들로 자리가 꽉 찼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인지 물어본다. 혼자 온 젊은 남자 손님에게 합석 가능한진 양해를 구하고 주방 앞 2인용 식탁으로 안내해 준다. 자리에 앉아 식당을 둘러본다.
깔끔하고 환한 식당 안은 여럿이 온 젊은 직장인들도 보이고 아버지 병원 검진 후 식사하러 온 부자분 등 손님들이 두루 섞여 있다.
주문을 위해 메뉴판을 살핀다. 국수만 여섯 가지다. 사계절 메뉴로 멸치국수(7,000원), 비빔국수(7,000원), 어묵 국수(8,000원), 고기국수(9,000원)를 판매하며 여름 메뉴로 열무국수, 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 국수는 곱빼기를 주문해도 보통과 가격이 같다. 인심이 넉넉하다.
식사 중 보니 영등포에서 오셨다는 중년 남성 두 분은 어묵탕과 고기국수 하나를 주문해 소주를 먹었다.
합석한 앞자리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가 식탁에 놓인다. 식당 창에 분홍색으로 쓴 ‘고기국수’를 눈으로 확인한 후 주문한다. 옆자리에 앉은 부자분도 고기국수를 주문한다.
주문은 주방으로 전해진다. 주방 안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일정량의 국수 면을 세 번 정도 집어 물이 끓고 있는 솥에 넣어 삶는다. 나와 부자분의 국수로 보인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분홍색 바가지로 찬물을 붓는다. 두 번 정도 반복한다. 맞춰둔 알람음이 꺼지자 삶은 면을 건져 찬물에 씻는다.
그사이 주문을 받았던 아주머니 한 분은 손님을 대하고 음식을 나르고 치우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삶은 면을 건져 찬물에 손으로 빡빡 씻는다. 전분기를 없앤 면을 그릇에 담는다. 왼손으로 그릇을 잡고 따로 끓여둔 솥에서 뜨거운 육수를 국자로 퍼 3~4차례 붓고 따른다. 토렴질이다. 토렴의 국어사전 설명을 보면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이다. 밥을 토렴하는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국수를 토렴하는 모습을 본 건 드물다.
소고기와 썬 대파를 고명으로 얹고 뜨거운 육수를 대접에 가득 붓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지만 차분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의 힘이 느껴진다.
옆자리 부자분과 내 자리에 거의 동시에 고기국수가 놓인다. 국물을 먹으려는 순간 주문을 받았던 아주머니 분이 2인용 식탁 자리가 났다며 옮겨 드린다고 한다. 편하게 먹게 하려는 배려로 보인다.
자리를 옮겨 고기국수를 바라본다. 제주도 여행 때 몇 번 고기국수를 맛봤다. 제주도 고기국수는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뼈를 고아서 우려내 돼지 수육을 얹는다. 이 집 고기국수는 국물 색은 좀 더 여린 소고기 육수에 소고기를 올린 국수다. 푸짐하게 담긴 뽀얀 면 위로 갈색 소고기가 듬뿍 올려져 있고 푸른 썬 대파가 색감을 보탠다.
숟가락을 들어 건더기를 옆으로 밀고 국물만 맛본다. 온도는 알맞고 간간하다. 몇 술 더 떠먹는다. 묵직하고 진득한 돼지 사골 육수와는 다르게 깔끔한 감칠맛에 소고기 육향이 여리게 입안을 감친다.
젓가락으로 바꿔 잡고 고명을 골고루 휘젓는다. 한 젓가락 면을 크게 휘감아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간간한 국물이 밴 국숫발의 알맞은 식감을 어금니는 눈치챈다. 어금니에 맞서지 않을 만큼의 찰기다. 찬물에 씻고 토렴한 수고스러운 손길이 만든 힘이다. 면에 묻힌 소고기 육수의 감칠맛이 그윽하다.
국수와 건더기를 함께 집어 입에 넣는다. 소고기 기운을 품은 구수한 육수는 면과 섞이며 짠맛이 덜해지고, 토렴한 매끈하고 보드라운 면은 입술과 키스하며 ‘후루룩’ 소리를 여운으로 남기며 술술 넘어간다.
국물을 충분히 머금은 소고기 우둔살은 졸깃하게, 대파는 아지작대며 씹힌다. 국숫발의 부드러움과 포개지며 결이 다른 씹는 맛으로 어금니를 놀린다.
썬 고추가 들어간 양념간장과 후추를 넣어 섞는다. 감칠맛, 신맛, 매운맛, 알싸함이 더해지며 맛의 변주를 준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다. 식감과 신맛은 부드럽고 담백한 국수와 어우러져 씹는 재미와 함께 입맛을 돋운다. 소고기와 몇 가닥 남은 국수를 먹고 남은 국물까지 싹 비운다. 배는 두둑하고 마음은 후련하다.
친절, 정성, 넘치는 인심에 맛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국숫집이다. 작은 식당이지만 손님이 많이 찾는 이유다.
식당 문을 나오며 입구 안내문을 다시 읽는다. ‘사랑방 같은 작은 점포’, ‘욕심 없이 음식을 나누자는 마음’, ‘처음과 같은 정성과 맛으로 보답’이란 글을 되새겨 본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