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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19. 2022

영원한 달리기 꼴찌 영광의 2등 되다

나는 세상에서 달리기가 제일 싫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를 하면 늘 꼴찌를 면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운동회가 너무 싫었다.


달리기를 좀 더 잘해보기 위해 나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저도 있다. 두 팔을 최선을 다해 빨리 앞뒤로 저으면 속도가 붙을까.. 두 다리를 최대한 멀리 뻗는 게 유리할까.. 그냥 보폭은 좀 좁더라도 두 다리를 최대한 빠르게 하면 좀 더 나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도 타보고 체력이라도 키워보면 빨라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달리기를 왜 이렇게 못할까 묻는 내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엄마도 달리기를 하면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지 당최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고.. 아.. 나의 이 바보 같은 달리기 실력은 유전자의 힘인 건가..


6학년이 되었다. 또 운동회다. 달리기 꼴찌 하는 내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하는 날이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딴 걸 왜 해마다 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친구들은 날더러 날렵하게 생겨놓고 왜 그리 못 뛰냐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뛰는 건 맞는지 묻기까지 한다.


엄마는 점심 거리와 맛난 간식들을 챙겨서 이모와 함께 학교로 오셨다. 속으론 이게 무슨 큰 행사라고 이모까지 오시냐고.. 기분이 그냥 그렇다. 잘 뛰어서 릴레이 주자가 되는 애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뛸까..


나의 달리기 차례가 왔다. 스타트를 위해 긴장을 하고 선생님의 총소리와 동시에 열심히 뛰어 나갔고 숨이 넘어갈 듯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역시나 또 꼴찌다. 손 여기저기 등수 도장들을 찍어 가는 친구들을 보니 너무 부럽다.


그런데 6학년이 되니 달리기가 또 하나 더 있다. '손님 찾기'란다. 그나마 '혼자' 달리는 게 아니니 부담감이 좀 덜했다. 총소리와 함께 달리기가 또 시작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미션 쪽지를 펼쳤다. <야구모자 쓴 아저씨> 다.


달리기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야구모자 쓴 아저씨가 눈에 띄었고, 큰 목소리로 " 야구 모자 쓰신 아저씨!! "라고 외쳤다. 아저씨가 '쏜 살'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바로 나에게 달려와서 내 손을 '덥석' 잡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가 달리는 건지, 아저씨 손에 매달려 끌려가는 건지, 고속열차를 탄 듯하다.


희한하게 숨이 차지도 않다. 늘 꼴찌였던 내가 지금 일등과 고작 한 발 차이다. 내 손을 '꽉' 잡은 아저씨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신다. 최선을 다해봤자 아저씨께 돌아가는 건 하나 없는데도..  달리기의 끝을 알리는 하얀 줄이 바로 눈앞이다. 내 생애에 이런 일이.. 비록 일등은 간발의 차이로 놓쳤지만 내 손 등에 '2등'이라는 도장이 찍혔다.


운동회 달리기에서 내가 2등을 하다니..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달리기에서 내가 2등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마치 전국 체전에서 일등 한 것 같이 황홀하다.


지금 50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그날의 영광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아저씨의 빛나는 눈빛과 총알같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잡고 내 달리는 그때의 모습. 내 두 다리가 과연 땅에 닿은 게 맞긴 한 건지 알 수 없는 달림.. 내 손에 분명 2등 도장이 찍혔지만 여전히 꿈만 같은 하루였다. 그날 운동회가 끝나고 세수를 할 때마다 2등 도장이 옅어져 가는 걸 얼마나 아쉬워했던지..


달리기 이후 그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을 정도다. 내 인생의 엄청난 한 획을 그어 주신 그분께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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