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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Nov 04. 2022

엄마의 역할은 쉽지가 않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한다만

아침마다 바쁘게 걷기 운동을 한 시간 하고 돌아와서 전날 저녁에 미리 마련해둔 걸로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원래 땀이 별로 없었던 난 양가 어머니들의 여름에 목에 수건을 두르고 땀 닦아가며 일하시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인도네시아는 일 년 내내 덥다. 이층 집을 오르내리며 집안일을 하기도 힘들다. 햇살 좋을 때 뒷마당에 이불을 널고 다시 거둬들이기만 해도 땀이 난다. 어디 나가려고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물론 24시간 내내 25도 이하로 집안 전체를 빵빵하게 에어컨 돌리는 집은 다르겠지만(얼마 전 갓 결혼해서 인도네시아에 와서 사는 새댁이 월 전기세가 한화 45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더라만) 난 문을 열어두는 걸 좋아해서 에어컨을 그렇게 많이 트는 편이 아니다.


아이의 도시락 준비는 당연히 불 앞에서다. 마음도 바쁘고 학교 가느라 준비 중인 아이는 아침에 <엄마>를 몇 번이고 부른다. 불 앞에서 땀 흘리며 바쁘게 도시락 준비하는데 이층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실렸나 보다.

"왜 또 화가 나있어?" 아이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

"학교 갈 때 필요한 것들은 저녁에 미리 챙겨봐. 그리고 <너를> 위한 도시락 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그렇게 불러대면 엄마도 기분 좋을 리가 없잖아?"

아침부터 두 모녀는 이렇게 또 실랑이다.


요즘 유튜브로 <응답하라> 클립들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없을 때>를 보며 감정이 복잡해졌다. 두 아들과 철없는 남편이 과자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엄마는 집안일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전화벨이 울리고 엄마는 짜증 섞인 몸짓으로 빨간 고무장갑을 탁탁 벗으며 청아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한다.


그렇게 엄마가 없으면 집안꼴이 예상 범주를 벗어나질 않지만 친정엄마의 일로 시골로 걱정 가득(나 없이 집이 어찌 될지) 안고 여러 번 당부를 시키며 떠난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은 당연히 엉망이 되었지만 터미널이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모든 정리를 일사불란하게 마무리하고 엄마의 부재중이라도 완벽하게 유지된 집을 자랑하듯 엄마께 선사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엄마가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자신이 없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완벽히 돌아가는 집안의 모습에 큰 상실감을 느낀 것이다. 작은 아들 정환은 그런 엄마의 미묘한 감정을 눈치채고 세 남자의 작은 사고들을 유도하고 엄마의 도움을 다급한 목소리로 요청한다.


그제야 엄마는 자신의 절실한 역할을 다시금 인지하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못살아. 다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이런대?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어!"

정환은 엄마의 표정과 말과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다시금 활력을 찾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안도한다.


사춘기 작은 아이는 아직 엄마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것도 스스로 처리 못하나 싶고 귀찮을 때가 많다. 사실 큰 아이가 홀로 사는 원룸을 가보고는 작은 아이는 대학 가기 전에 생활습관을 제대로 갖추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아직 몇 년이나 남았지만 두 아이 모두 홀로 서기하고 나면 나에겐 어떤 감정이 남을까? 예측하기 힘들다. 경력단절로 이제 일도 없는데, 어떤 목표를 갖고, 뭘 바라보며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우기라 내내 비가 오더니 해가 짱짱하다. 이불이나 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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