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동시에 마라톤에 빠진 남편

운동에 미친 남편을 어쩔꼬

by Sassy

2000년 11월 18일 2년간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고, 나만 바라보겠다고 맹세한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마라톤에 빠졌다.


"나 마라톤 해도 돼?"

"마라톤?"

"응.. 나 해병대 있는 동안 허리를 좀 다쳤는데 자세교정 목적으로 한번 해볼까 해서.."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와 가벼운 산책 밖에 모르던 나는 얼떨떨 하긴 했지만 런닝과 반바지만 입으면 되니 돈도 별로 들지 않을 테고 그냥 한 번씩 뛰는 건데 나쁘진 않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 한번 해봐.."


남편은 통보와 동시에 <런너스클럽>에 조인했고 2001년 4월 7일 경주 벚꽃 마라톤 하프코스에 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우린 경주로 향했고, 남편의 첫 마라톤 도전이 시작되었다.


뛰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선수들 집결지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서 삼삼오오 몸을 풀고 있었다. 고등학교 체력장 100미터 기록이 21초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달릴 채비를 마친 남편은 런닝과 달리기용 반바지를 입고 출발지에서 대기했고,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전국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마라톤 마치는 동안 홀로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던 나는 벚꽃 구경이라도 좀 해볼까 했지만 꽃샘추위 탓인지 하얀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은 하나도 없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남편은 도착했고, 첫마디가

"(헥헥헥)와.. 진짜 힘들다. 죽을 것 같아.. 다시는 안 할 거야. 내가 이런 짓을 도대체 왜 했을까.. 걷기도 힘들다.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운전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주일을 뭉친 다리 근육 때문에 끙끙대며 회사를 다니더니 첫아이 낳고 고통을 이미 깨친 산모가 다시 둘째를 가지려 하듯 근육이 풀리기가 무섭게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두 번째로 4월 27일 전주. 군산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신청을 하고 만다. 운동보다는 예술 쪽인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워낙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성격인 남편이라 또 바로 전주로 향할 채비를 했다.


우리 부부는 전주 어느 숙소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이른 아침 전주 특미인 콩나물국밥을 감탄을 자아내며 한 그릇씩 후딱 비워내고 서둘러 마라톤 집결지로 향했다. 경주 때와는 달리 국제 마라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운동도 싫어하지만 운동 잘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 적도 없었던 내가 운동 쟁이 남편을 만난 건 정말 운명의 장난이라 해야 하나..


남편 외엔 일행이 없었던 나는 홀로 선수들 도착지를 또다시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다. 선수들 중에는 당장 쓰러질듯한 표정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당시 20대 후반 운동치였던 나는 도무지 그들의 도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첫아이 임신을 알게 됐고 남편은 주말이면 홀로 버스 타고 여기저기 마라톤을 참가하러 전국 팔도를 헤치고 다녔다. 남편들 조기축구만 안 시키면 될 줄 알았더니 더한 복병이 많았던 거다.


12월, 첫아이 예정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 부부는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산부인과를 향했다. 진료가 끝나고 상담시간, 남편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저.. 선생님, 제가 다음 주에 마라톤 대회 신청을 해놨는데 참가해도 되겠습니까?"

'미친 거 아냐? 저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참나.. 의사 선생님이 뭐라 생각하겠어?' 속으로 한심해하며 눈빛으로 그만하라고 경고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참가하세요! 아기가 아직 내려오지도 않았고 지금 상태로는 예정일을 넘길 것 같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의사 선생님도 런너스클럽 회원이란 말인가? 그래도 남편이 예비산모 곁에 있어주는 게 맞지 않나?


2년 동안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한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는 뒷순위로 밀어내 버리고 마라톤에 끊임없는 구애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정일도 가까워 오는데 꼭 그 대회를 참가해야 되겠냐는 원망 담긴 나의 질문에는

<내 아내의 순산을 위해>를 적어 머리에 묶고 뛰겠다는 답만 남기고 남편은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