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남편의 인라인 대회 도전기

끝내 쇄골을 부러 뜨리다니..

by Sassy

결혼과 동시 마라톤에 빠지기 시작한 남편은 틈만 나면 달리러 나갔고 한더위에도 도저히 안 되겠다며 한 시간 넘게 달리고 와서는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샤워로 씻어 내고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했다.


술을 좋아해서 허구한 날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왔던 남편 때문에 걱정이 끊이는 날이 없었는데 한 번은 새벽 두 시가 넘어도 집에 들어오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 것이다.


화가 났다가 걱정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뜬 눈으로 시계만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런닝과 반바지 차림으로..

그것도 흠뻑 젖은 채..


회식을 마치고 달리기가 너무 하고 싶어 자기 차에 늘 담아두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달렸단다. 차로 한 시간 거리를 그것도 비 오는 도로 위를.

지금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과 사는 건지.

태어나 처음 접하는 종족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마라톤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가까운 거래처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제조했는데 그걸 보면서 또 마음이 동했나 보다. 인라인을 탈 때 받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스케이트용 옷을 사고 인라인 스케이트의 프레임을 바꾸고 바퀴의 파이를 키워가며 전문 선수라도 된 듯 몰입하기 시작했다.


제발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체육공원 사흘이 멀다 하고 더니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제주 인라인 대회 참가를 위해 기록을 재가며 바깥 트렉을 도는 중 트렉 안에서 타고 있던 아이 하나가 주위를 살피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급히 피하려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난 돌잡이 아이가 있어 회사와 육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는 인라인 타다가 넘어져 병원에 실려간 것이다. 그날은 가 퇴근 후 인라인을 타러 가는지도 몰랐던 나는 왜 아직도 집에 오지 않느냐고 전화 걸어 물었고 그는 사실대로 말하기를 망설이며

"어... 저기... 그... 사진... 찍느라고... 전화를.. 이제.. 받았어.,. 미안해..." 했다.

신발 관련 업무를 보고 있던 터라 대리점에 진열된 신발 사진을 찍으러 간 건가 했다.


그러고 또 한참 뒤 아직도 오지 않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제야 자기 신체에 문제가 생겼고 그 부분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구체화해줬다.


그 사고 몇 달 전에도 같은 이유로 넘어져 팔에 금이 간 적이 있었던 터라 걱정보단 화가 났고 만사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함께 타던 지인이 수술동의서 사인을 한 건지 난 아직도 모른다. 그다음 날 회사 퇴근하고 나서야 그가 수술한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심하던지. 그나저나 수술을 하려면 큰 병원을 가던지 하지 않고 이렇게 조그만 병원에서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술은 이미 끝났고 뼈가 제대로 잘 붙기만 바라는 수밖에.


당분간 금식이라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목이 너무 마르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다고 입술 만이라도 젖은 수건으로 닦아 달라 사정사정했고 거즈에 물을 적셔 입술에 대어줬다. 젖은 거즈가 입술에 닿자마자 머금은 물을 오랜 시간 굶주린 어린 아기가 어미젖을 빨듯 빨아댔다. 탈수기가 따로 없다. 남편인지 아들인지 웬수인지 그와 엮여버린 내 인생을 한탄했다. 원에 확인해보니 한 달 정도 입원해야 한단다.


정해진 틀 밖 벗어나기를 유난히도 싫어했던 나에게 규칙이란 단어의 뜻도 모르는 것 같은 철부지 남편이 오다니.. 인생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