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냉장고를 부탁해.>>

작은 정리, 큰 위로

by 소바

여름이 되니
회사 냉장고가 포화 상태다.

누구 것인지도 모를
유통기한이 지난 유제품,
물렁해진 고구마,
껍질이 마른 삶은 달걀들.


음...
누군가는 정리해야 하고,
자꾸만 눈에 밟혀서
결국 또 내가 나선다.
사실 안 나서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참, 늘 그렇다.

다행히 몇몇 선생님들이
망설임 없이 함께 해주셨다.

청소를 시작하며
분명 공지했다.

"이름 없고, 유통기한 지나면 버립니다!"

그런데도
하루 지난 요거트 앞에선 망설여진다.
"요거트는 발효식품이잖아?"

"하루? 하루는 애매하긴 해."

냉동실에서 발견한
2주 지난 닭가슴살을 들고는 또 망설인다.
"냉동은 괜찮지 않나?"

"울 엄마는 냉동실에 다 박아두시는데..."

이름도 없고, 유통기한도 지났지만
버리는 게 망설여지는 마음.
괜히 누군가의 한 끼를
내가 함부로 버리는 것만 같아

손 끝이 자꾸 느려진다.

그때, 한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해준다.

"공지했잖아요."
"유통기한 지나고 이름 없으면 다 버리기로."

오, 그저 빛!


냉장고의 장기 체류자들

밀당하던 나를

한 번에 정리해 주셨다.

혼자였다면
끝까지 눈치 보다가
버리지도 못했을 거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씩 말을 건넨다.

"정리하느라 고생했어요."
"다음엔 우리가 할게요."

그래,
나는 늘
큰 걸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고생했어."
"고마워."
그 한마디면
마음은 채워진다.

몸은 조금 고됐지만,
속은 괜히 따뜻해지는 하루.

그래서 그런 날이 있다.
작은 수고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는 날.



소바로그.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
10.<<제가 스팸인가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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