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즐거움이라고는 먹는 것과 알딸딸한 기분밖에 없어
나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치료 중에 있다. 정신과에 방문하기 전까지 술 따위 의지로 얼마든지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미디어에 비치는 심각한 수준의 중독이 나는 결단코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과에 가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 최장 기간이 고작 이틀이라는 사실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나. 근래 음주 양상을 떠올리자 더 그랬다. 퇴근 후 다음 날 일정과 상관없이 적게는 맥주 한 캔부터 많게는 페트 소주 한 병. 휴일에는 10시부터 배달 음식과 소주를 시켜 오전부터 얼큰하게 취하곤 했다. 나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인생의 즐거움이라고는 먹는 것과 알딸딸한 기분밖에 없어.
내가 처음부터 술을 좋아했나? 합법적으로 음주가 가능했던 스무 살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답은 '아니요'다. 반 병에도 얼굴과 몸이 온통 붉어졌고, 뇌에서는 절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나는 곧잘 수행했다. 성인이 되고 몇 해가 지나자 스무 살 때보다는 주량이 조금 늘긴 했지만 그래봐야 한 달에 한두 번 먹는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음주가무 생활이 시작된 건 내가 독립한 이후부터다. 본가와 직장과의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시작한 8평 원룸의 삶은 통근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지만 그다지 녹록지 못했다.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와 얄팍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집의 인테리어는 단순했다. 노트북 한 대와, 테이블, 그리고 침대. 이러한 환경에서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은 많을 거다. 하지만 나는 게을렀고 이러한 환경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말인즉슨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거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내가 집에서 하는 주된 활동이었다.
가끔 책을 읽기도 했다. 요리를 하기도 했고, 간단한 운동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에너지가 충분할 때에나 가능했다. 직장에서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집에 도착하면 아홉 시나 열 시였다. 에너지는 바닥이지만 보상심리가 솟구쳤다. 이렇게 힘들었는데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을 하자. 아무런 노력과 에너지 없이도 손쉽게 도파민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게 내게는 술이었다. 혼자 술을 먹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첫 입은 쓰다. 하지만 자극적인 배달 음식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개운하게 느껴졌다. 쓴 맛을 지우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또 그 자극적인 맛을 중화시키려 술을 들이키고. 이러한 과정들을 몇 번 거치다 보면 오래 지나지 않아 목 부근이 뜨끈해진다. 몸에 취기가 오르면 잡스러운 생각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멍청하도록 깨끗한 상태로 영상을 시청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슬퍼진다. 한마디로 감정과잉이 된다. 전자는 들뜨는 기분이 들고 용기가 생긴다. 제정신일 때는 절대 연락할 일이 없는 사람의 연락처를 찾는다. 후자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해 뜬금없이 오열을 하거나 하소연을 한다. 그다지 슬픈 일도 아닌데 말이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슬퍼지거나. 나는 술을 마시면 반드시 하나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반드시 전 날의 일을 후회했다. 아침에 일어나 통화 목록을 보고 머리를 부여잡고, 오타가 가득한 메시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과음하게 되면, 전두엽이 마비되어 충동 조절을 하지 못하게 된다. 취하지 않았을 때라면 이성으로 충동을 억누르며 사는데 술이 들어가면 마치 억압에서 해방이라도 된 듯이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성이 누르는 충동들은 대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헤어진 남자친구가 있다. 그가 보고 싶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적인 이유로 그와 다시 만나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제정신일 때는 그에게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혈중 알콩 농도가 올라가면 그런 이유들이야 다 소용없고 오로지 '보고 싶다'라는 충동에만 매몰된다. 건강하지 않은 음주 습관이다. 하지만 그걸 앎에도 멈출 수 없었던 건 술을 마시는 순간만이 내 하루 중에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공간에서 혼자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 빈도는 무섭게 늘어났다. 그리고 해당 시기에 인간관계로 많이 괴로웠다. 좋아했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가뜩이나 그런 시기에 내가 일부러 소리 내지 않으면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8평 원룸의 적막함까지 더해져 세상에 홀로 고립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미한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돌파구를 음주라는 자기 파괴적 방식으로 택한 것은 큰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