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문턱을 넘다

by 김여너 Aug 12. 2024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52만 6841명이 알코올 중독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알코올 사용장애를 극복하고 건전한 음주 문화를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알코올로 삶의 애환이나 유희를 치환하며 살고 있을까?

 

 당시에는 통계의 일원이 아니었으나 다시 집계를 한다면 분명 인원 한 명을 늘리는 데에 일조할 나였다. 가족과 떨어져 살고, 친구들과 소원해지고, 고독해진 나는 알코올 의존증과 연관된 키워드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청년 고독사나 어떠한 정신질환 같은 것들 말이다. 술이 야기한 건지 본래의 불안한 심리에 술이 더해져 그런 건지,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그리고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었다. 더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근무가 길어지면 저절로 발길이 편의점을 향했다. 30초 정도 무알콜 맥주와 맥주 사이에 헤맸지만 결과는 뻔했다. 상기되고, 멍청한 상태로 보내는 짧은 저녁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엔 스스로의 초라한 의지에 자괴감을 느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칭하기도 하는 현대다. 내과를 넘는 것보다야 높지만 정신의학과의 문턱도 이전보다 많이 낮아졌다. 정기적으로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는다고 당당히 매체에서 밝히는 연예인도 있다. 그렇지만 꺼려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뒤에 나올 말은 편협하고 무지하고 무식했던 일전의 내 생각이다. 지금은 과거와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미리 사죄한다.


 정신과에 다닌다는 것은 어쩐지 정상의 범주와는 조금 동떨어진 상태라고 여겼다. 그리고 타인에게 당당히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전파하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것도 못하면 병신이다.'


 업무 할 때에 자주 되새기는 말이다. 일이 조금 버겁고, 힘들 때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말이다. 저 말을 속으로 되새기면 거짓말처럼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성취했었다. 그런데 알코올을 조절하는 것만큼은 저 말을 되새겨봤자 말짱 도루묵이었다. 몇 번의 다짐과 몇 번의 자괴감을 느끼고 깨달았다. 이미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났구나. 혼자 해결한답시고 방치하면 나중엔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 같았다. 그제야 전문적인 도움을 통해 이 사태를 해결할 마음이 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이 고난을 해결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에 병원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인근 몇 개의 병원이 나왔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제일 가까운 병원을 골랐다. 경험이 없으니 선택의 기준이 단순히 얼마나 집과 인접한 지밖에 없었다. 의존 증상이 심해지며 무기력도 심화되어 먼 곳이면 마음이 바뀔 것 같았다. 평일 낮 시간에도 이미 완료된 시간이 많았다. 예약은 15분 단위로 쪼개져 있었다. 비어있는 시간 하나를 겨우 예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원 확인 문자가 왔다. 초진에는 검사해야 할 항목이 있으니 본래 예약 시간보다 몇 분 일찍 오라는 거였다. 겨우 문자일뿐이지만 문턱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는 현재 처한 삶보다는 나을 것이라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다. 만취 상태로 벌였던 일들에 대한 과거의 회한에 자주 처참한 기분이 들던 날들로부터 멀어질 기회라고.

이전 03화 영역을 침범당하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