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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머티리얼리스트> 리뷰

by Hana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면, 생각보다 대답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사랑의 언어’로 설명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그리고 스킨십. 각자 느끼는 우선순위가 다르다. 나에게는 함께하는 시간과 진정한 대화가 무엇보다 크고, 그 다음이 인정의 말, 봉사, 스킨십, 마지막이 선물이다.

최근 본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이 질문에 또 다른 시선을 던져준다. 제목 그대로 ‘물질만능주의자’를 뜻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서야 그 뉘앙스가 피부에 와 닿았다. 여주인공 루시는 매칭매니저로서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돈과 조건에 얽매인다. 과거의 가난한 기억, 그리고 돈 때문에 연인과 헤어졌던 트라우마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골드미스의 화려한 삶이지만, 내면은 아물지 못한 상처였다.

영화 속 매칭매니저가 진행하는 인터뷰 장면들은 유독 흥미로웠다. 사회에서는 친절하고 세련돼 보이는 사람도, 막상 배우자를 고를 때는 노골적인 조건을 드러낸다. 피부색을 고집하거나, 경제력만 따지는 식이다. 루시의 직업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누군가를 연결하려면 상대의 경제 상황부터 은밀한 욕망까지 파헤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루시 자신도 결국 큰 전환점을 맞는다. 직감을 믿고 매칭을 주선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가 되어 돌아온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소개팅 자리에서 번번이 마음이 어긋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상대에게는 특별한 ‘고객’이 아니라 그냥 처리해야 할 ‘조건’일 뿐인 듯한 씁쓸함.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건을 따지는 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도 하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루시는 다시 옛 연인과 약혼을 앞두고, 매칭매니저로 복귀할지 고민한다. 그 장면은 결혼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왜 현대 사회에서 특히 여성에게 결혼이란 질문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지를 묻는다. 한 고객에게 루시는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다. 결혼을 꿈꾼 이유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언니와의 오래된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부끄럽지만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감춰둔 질투와 비교의 그림자가 있기에, 오히려 그 고백이 낯설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 역시 내 연애를 돌아보게 됐다. 좋은 감정만큼이나 나 자신을 직면하는 일이 주는 갈등이 크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 혹은 알았지만 외면했던 부분을 연애 속에서 상대의 입을 통해 듣게 될 때, 그 기묘한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사랑을 할까. 왜 연애의 끝은 결혼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할까. 아마도 사랑은 단순히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하고, 깨지고, 다시 이어붙이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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