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인색함에서 온 불필요한 고집
사람들은 제각기 성장한 환경, 경험이 다르다. 하나의 현상을 보더라고 해석이 다르기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무엇이 절대적이라고 여긴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이 달라져 새로운 것으로 재해석되길 반복하는데 사람과 관련된 것은 얼마나 변화무쌍하겠는가.
최근, 마트에서 일을 하며 의무휴무일을 ‘논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마트에서 정한 휴무일로 지정된 요일에 휴무를 하는 것인데 이에 “노냐요?”라고 물어 보는 고객이 있는 것. 처음엔 뭔가 그랬다.
회사도 휴무일에는 건물 자체가 쉼으로 평일동안 일했던 사람들이 주말에는 집이나 밖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휴무일을 보낸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세계적으로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명절 연휴 때는 쉰다.
업무 특성상 주말, 공휴일, 명절에도 일하는 곳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쉴 때가 기회가 되기에 (순전히 나의 경험, 생각, 느낌으로만 언급한다) 쉬지 못한 날 다른 날에 휴무일을 갖는다.
쉼은 고된 일에서 벗어나 육체적, 정신적 체력을 재충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쉰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느낌이 다르기에 나의 생각으로만 이야기한다. 쉼이 있어야 자신을 알게 되고, 쉼이 있어야 바쁘게 스쳐 지나간 것들을 여유롭게 살펴 볼 수 있다.
멍하니 있는 것 조차 쉼으로 방전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무언가를 할 때 보다 가만히 쉴 때 복잡함, 산만함, 어려움을 단순, 간결, 쉬운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삶의 시선이 확장되고 하나의 반복에서 수평적 변화로 나아 갈 수 있다. 쉬는 방식이 다양할 뿐이지 결국엔 이런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논다’라는 말에서 들리는 뉘앙스가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으로 와닿음은 그 사람의 말 전달에서 느껴진 어떤 느낌 때문이다. 휴무일이라는 단어를 노는 것과 동일시 볼 수도 있는데 어떤 부정적인 무언가가 사회적으로 일하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것 같다. 이는 스스로 느낀 것을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게 된다. 휴무일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는데 ‘논다’라고 하니 평소 노는 것의 인색함이 한순간에 몰려온 것. 이것을 또 사회로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 모든 건 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타인이 나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았다. 단어 선택의 예민함이 나의 두뇌를 자극했다 하겠다.
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찾아 온 것은 아직 내 안의 여유가 부족해서, 서툴러서 생긴 결과다. 공통적이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교집합 하나 없이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스스로 나만의 쉼을 생각해볼 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일단 안 좋게 보는 걸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유연한 변화가 지속되는 시대에 홀로 자기만의 고집이 옳다고 우기는 헛된 아날로그적 시위를 펼치고 있는 거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형태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 복잡함을 만들어 낼 이유가 있는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나만의 쉼이 존재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더 부족함을 느낀다는 건가.
쉬는 것을 모른다고 함은 거짓말이다. 무언가 결핍에서 오는 어떤 갈망이 이미 놀고 있음에 성에 차지 않음을 내적 신호로 보냈음에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인색함으로 불필요한 고상함을 주장하는 태도가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프레임을 가지게 한 것. 현실 세계의 불만족에서 나만의 이상적 세계가 무조건 펼쳐져야 하는 생각에서 어떤 사람이 말한 “노냐요?”에 무의식적인 회의감을 가져온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