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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함

내적 소리 귀기울임 1

by 삼삼

불안정함은 이분법적 분리가 경계를 이루며 유연한 이동이 가능케 하는 순간이다. 너무 낯설어 마음이 흔들리는 듯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외부의 소음에 오감을 집중하게 된다. 불안하기에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 직전까지 반복적이지만 결코 반복적이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일터에서 벌어진 새로운 일,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 희노애락이 무작위적으로 펼쳐지는 순간, 건물 밖과 안이 이질적인 공간이라 느껴지는 순간. 반복은 생각으로 예측이 가능하지만 시공간은 예측 불가능함에 경험적으로 습득된다.


매일 글을 쓰는 생각을 하다 보니 무언의 강박 같은 것이 나를 짓누르는 듯 했다. 올해 수필 단독 출간을 목표로 삼으며 출간을 위한 주제가 생긴 듯 아닌 듯한 혼란을 가지고 있다. 문학 작품 원고를 쓰는 것도 아닌데 두뇌에 힘을 바짝 주면서 감정적인 소모로 체력을 낭비한 게 아닌가 하는 심리적 의심이 든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연함이 나를 감싸며 자리 잡지 못한 답답함을 시간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기 할 일에 충실한다. 책을 단독 출간한다는 생각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못 보는 건 아닌지, 아직 보여준 것이 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모르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스스로 정의한 본질은 고정적인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것, 오늘의 것은 서로 다른 형태이고 오감의 감각이 유기적으로 신경을 타고 가게 된다.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안다고 함은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모르는 것이 된다.

대중교통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매일 반복하는 행위-잠에서 깨어 집밖으로 나와 일터의 공간으로 향하는 여정-지만 오감이 경험하는 것들은 새로운 것을 감각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한 대기줄, 버스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보는 것, 시간의 여유가 생김으로 마음이 안정됨, 갑작스런 사고 발생. ‘나’는 그대로지만 ‘바깥’은 같은 듯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집밖을 나와 바깥을 보며 짓눌린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을 두눈을 통해 전달 받는다. 막연함이라 생각한 건 아무것도 안함에서 비롯되어 그냥 해나감의 자신이 없어 당장의 결과물을 만들려는 조급함이 오감의 감각을 닫히게 했다. 알 수 없기에 오감을 열어놔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닫아 놓고 있었으니, 글의 페이스 조절 안됨은 나만의 글 마라톤 완주 체력을 만들어 놓지 않음이다.

스스로 정해버린 고정적 관념을 계속 담아 둘 필요가 없는데 손에서 놓으려 하면 자꾸 불안하여 안절부절 가만히 집중하지 못한다. 감각은 경험할수록 느는 것이고 질문과 문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부딪혀야 발생한다. 불필요한 내적 갈등이 많은데 고집스럽게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무의식 속 집착, 걱정, 불안 등이 있는 그대로의 낯섬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세상과 분리시킴은 최선이 아니었다.


경계는 서로 다른 두가지가 하나로 결합되지 않고 경계를 통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수평적 다양함이 둥글고 파란 공간에 존재함으로 경계는 새로운 하나로 보여 질 수 있다.

경계에 머물고 있다면 나의 글도 이리저리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겠다. 이를 스스로 막는 건 흐르는 물을 고이게 하여 썩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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