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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리 Oct 17. 2021

“난 부인이 셋 밖에 안 되는데?”

결혼, 결혼, 그리고 또 결혼과 이혼...중드 속 혼란의 결혼제도

 장장 70부작에 달하는 <녹비홍수>는 송나라 배경입니다. 중원이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됐던 5대10국을 통일한 왕조죠. 960~1277년 사이니,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입니다. 


 <녹비홍수>에는 주인공 성명란이 서녀로 태어나 설움을 겪지만 뛰어난 처세술과 지략을 발휘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서녀는 정실 부인이 아닌 다른 부인(첩)의 딸을 부르는 말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조정관리가 첩을 하나도 두지 않다니 위엄이 떨어진다는 둥, 다른 사람이 우리 가문을 어떻게 보겠냐는 둥 집안 어른들이 한마디씩 하며 정실 부인과만 결혼해 아껴주겠다는 남자주인공 고정엽을 괴롭힙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중국에서는 두 정실 부인을 두는 건 불법이었습니다. 당나라 때 법이 중혼을 금지했거든요. 부인은 반드시 한 명이어야 했지만, 첩은 여럿 둘 수 있었습니다. 지위가 높은 관리일수록 첩도 첩을 많이 둘 수 있었는데요. 1품 관리는 10명, 2~5품은 각각 8,6,4,3명 둘 수 있었고, 관리가 아닌 부자는 부인 한명, 첩 한명을 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녹비홍수>에서 5품 관리였던 성명란의 아버지는 첩을 세 명 둘 수 있었겠네요. 씩씩하고 당찬 주인공 성명란은 두 번째 첩의 딸이었습니다.

사고뭉치 방탕아로 보였지만 알고보면 진국이었던 고정엽(왼쪽),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 아련남 제형(가운데), 수줍은 아가씨에서 어엿한 안주인으로 성장하는 성명란. (출처=중화tv)

 이혼은 어땠을까요? 성명란의 사촌언니는 남 탓만 하는 허랑방탕한 남편과 이혼하며, 바리바리 싸왔던 예물과 하인들을 모조리 가져가 버리기도 하지요.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의외로 이혼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습니다. 1) 우리가 칠거지악이라고 부르는 ‘아내를 버리는 이유’를 중국에서는 칠출 또는 칠거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자식이 없거나, 음란하거나, 도둑질하거나 질투하면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거죠. 중국 서한시대 <대대예기(大戴礼记)>라는 책에서 이 말이 나왔습니다. 

 반대로 아내를 버릴 수 없는 사유도 있었는데요. 아내에게 돌아갈 친정이 없을 때, 삼년상을 당했을 때, 가난했던 집에서 결혼 후 부자가 되었을 때. 이렇게 세 가지 경우에는 앞의 7가지 이유가 있어도 아내를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 위진남북조까지도 이혼은 계속 존재했고, 칠출, 삼불거와 관련 없는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남자였죠. 이혼은 ‘아내를 버린다’는 말로 쓰였고, 법적으로는 아내가 이혼을 신청하지는 못했습니다. 북송의 대학자였던 정이(程颐)가 제자와 나눈 문답이 전해집니다. 현대인이 보면 무척 이상한 질문이지만, 그 때 사람들은 진지했던 모양입니다. 


제자: 아내와 이혼해도 괜찮을까요?

정이: 아내가 쓸모없다면, 이혼해도 해가 없다. 스스로 수양하고 가족을 잘 단속하는 것은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제자: 조상님들 중에 별로 나쁘지도 않은 일로 성급하게 아내와 이혼한 일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시어머니 앞에서 개를 혼내거나, 잘 익지 않은 배를 대접한다든지 하는 일요.

정이: 자기 시어머니 앞에서 개를 혼낸 건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언젠가 또 다른 이유가 생겼을 때 남편이 이 일을 구실삼아 이혼할 수 있겠지.


제자: 이렇게 사소한 일로 부인이 쫓겨난다면 반대가 없을 수가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정이: 부인이 자기 잘못을 알 것이다. 자기 잘못을 교정할 수 있다면 괜찮다.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나. 자기 부인의 잘못된 행실을 폭로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소인이다. 군자는 이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것처럼 말한다. 군자는 용서하는 사람이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개를 혼내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군자는 용서하는 사람이다, 하고 점잔을 빼는 학자 이야기가 좀 우습기도 합니다. 



1) Tang, Qiaomei. 2016. Divorce and the Divorced Woman in Early Medieval China, Harvard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Arts and Sceinces.


2)love and marriage :social regulations

https://www.encyclopedia.com/history/news-wires-white-papers-and-books/love-and-marriage-social-regulations 


 The Inner Quarters: Marriage and the Lives of Chinese Women in the Song Perio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pp. 257-258.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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