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슬픔의 단가, 1장
정말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것뿐인데,
시간은 아침이 되어 있었다.
아빠가 없는 집에서, 다섯이 된 우리는 장례식장에 갈 준비를 했다.
형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창밖엔 겨울 햇빛이 낮게 걸려 있었고,
차 안에는 숨소리만 들렸다.
도착하자마자 장례식장 사무실에 들러
직원들과 절차를 의논했다.
영정사진은 어떤 걸 쓸지,
수의는 어느 걸로 할지,
식사는 몇 인분을 준비할지,
꽃은 어디까지 둘지,
제사상에는 뭘 올릴지.
발상, 입관, 발인—
낱말로만 알고 있던 절차들이
눈앞에서 하나씩 현실이 되어갔다.
십만 원짜리 수의부터 삼백만 원짜리 수의,
꽃 장식은 삼십만 원에서 백오십만 원까지.
가격표를 보는 순간
다시 돈 걱정이 밀려왔다.
돈의 크기에 따라 아빠의 마지막이 결정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제일 적게 드는 걸로 하자.”
엄마와 형이 머뭇거리는 걸 보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우리 형편에 그게 맞는 거 알아.
근데 마음이 좀 불편하네.”
형은 조심스레 말했다.
“형, 그냥 제일 싼 걸로 하자.
나도 불편하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
“영락아, 네 마음 알아.
근데 네가 만약 영안실에 누워 있는 아빠를 봤다면
그렇게 쉽게 말 못 했을 거야.”
그 말에 나는 숨을 삼켰다.
‘그래, 우리 아빠 돌아가셨지.
지금 우리는 그걸 의논하고 있는 거구나.’
그제야 현실이 밀려왔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화면 속 아빠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때, 엄마가 말을 꺼냈다.
“엄마가 장례비용은 낼 테니까,
너희는 지금부터 돈 걱정 말고
아빠 잘 보내드리는 데 집중하자.”
엄마는 나와 형을 번갈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한마디에,
우리 형제는 문턱 아래서 간신히 숨을 고르는 기분이었다.
“영정사진과 수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나중에 변경하셔도 괜찮습니다.”
직원이 진지한 태도로 말을 보탰다.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희 아버지 영정사진은 이걸로 해주세요.
최대한 밝게 보정해서 인화해 주시고요.
수의는 중간가로 부탁드릴게요.
나머지는 기본으로 할게요.
지인 중에 장례지도 일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그분 오면 상의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부고장 발송 설명을 듣고
우린 사무실을 나왔다.
그때 문득,
형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아빠에게 가장 많이 혼났던 건 형이었다.
등짝에 피멍이 들고도 끝내 울지 않던 사람,
그게 형이었다.
그런 형이 지금,
아빠의 마지막을 위해 가장 단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상처가 더 깊은 사람이
왜 더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지키는지,
왜 아직도 아빠에게 체념 대신 품위를 남겨두는지.
‘형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미움이 너무 커서 이제 닳아버린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여전히 돈과 현실을 계산하고 있었는데,
형은 이미 감정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영락아, 잠깐만.”
형이 나를 불렀다.
“엄마, 며느리, 현서랑 먼저 올라가세요. 금방 갈게요.”
나는 형을 따라 흡연장으로 나갔다.
담배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영락아, 형도 네 마음 알아.
어릴 때 용돈 한 번 받은 적도 없는데,
이제 와서 빚만 남긴 아빠한테
돈을 써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프지.
그래도, 좋든 싫든… 우리 아빠잖아.”
형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오늘은 아빠 마지막 길이야.
이제 더 이상 아빠 때문에 속상할 일은 없을 거야.
엄마한테 너무 기대지 말고,
나중에 후회되지 않게 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의 돈 걱정만 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알겠어, 형. 내 생각이 짧았어.
지금 있는 돈 다 보낼게.
부족하면 적금이라도 깰게.”
“그래, 고맙다.
형도 어제 내려오면서 단기 대출 좀 받았어.”
나는 형의 계좌로 백만 원을 송금했다.
우리는 말없이 담배 두세 개 더 피우며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장례식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