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5부 : 끊지 못한 사슬, 2장

by 여우비

봄은 생각보다 빨리 여름으로 넘어갔다.

제주의 햇빛은 점점 강해졌고,

거리에는 반팔과 슬리퍼가 늘어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출근했고

같은 길로 집에 돌아왔다.

달라진 건 없었는데

술은 점점 빨리 비워졌다.


퇴근하면 냉장고를 열었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병이 눈에 들어왔다.

마시지 않으려다

그냥 한 잔만 따른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현서는 내 옆에 앉아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말을 걸었다가

내 표정을 보고

다시 삼키는 게 보였다.


취기가 오르면

말수가 늘었고

끝이 흐려졌다.


현서는 대답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은

조금씩 멀어졌다.


“오늘은 그만 마시면 안 돼?”

그 말이

부탁처럼 들려서

괜히 짜증이 났다.


“괜찮아. 나 멀쩡해.”

그 말이

가장 멀쩡하지 않을 때

나왔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손을 들지도 않았다.

그래도 방 안은

조금씩 망가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여우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 여우비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가끔 내리는 찰나의 여우비는 밝게 지내다가도 순간적으로 우울함이 스쳐지나 가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6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