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재 그리고

맞은바라기

by 다날

아직도 마지막 한 번은 절을 하지 말았어야 하나, 떠올린다. 마흔여덟 번만 했으면 평생 네가 옆에 있었을까 하고.



비가 치덕치덕 오던 날 성북구의 어느 사찰에 서 있었다. 불자는커녕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내가 눈 떠 보니 불상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어떤 속마음도 비추지 않고 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정면과 양 측면에 불상이 모두 있어 어디에 절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느 분에게 돈을 넣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모든 불상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중앙 맨 뒷자리에 방석을 깔고 냅다 절을 하기 시작했다.

마흔여덟 번 절을 했다. 행여나 실수로 마흔아홉 번이 될까 봐 신중하게 숫자를 세며 절을 했다. 49재 때는 마흔아홉 번의 절을 끝으로 망자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주는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의 절을 남기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너에게 말했다.



이상하게 그날은 주말인데도 일찍 나가야 할 일이 있었지. 아니 방학이었던가? 704호 앞 계단에 하얀 네가 눈처럼 앉아 있었지. 무더운 7월이었을 텐데 말이야. 이빨을 보이며 경계하던 너는 똘이를 보고 우리 집으로 처음 들어왔지. 같은 강아지라고 똘이를 참 잘 따랐어. 네가 왜 7층에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친할머니의 49재가 끝나고 찾아와서인지 아빠가 너를 당신의 엄마라며 좋아했지. 그때 너는 이제 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번씩 다 훑어본 아기 강아지였어.

그렇게 넌 우리 식구가 됐어. 유난히 엄마를 좋아해서인지 간혹 샘도 많이 났어. 그래도 항상 도어록 소리만 들려도 짖으며 달려 나오며 반겨줬지. 가끔은 가족이 아니면 집을 나갈 때까지 짖던 너 때문에 친구를 데려올 수도 없어서 밉기도 했어.


나무라기도 했던 내가 미안해. 그 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지금은 너무 듣고 싶어. 그리고 유난히 넌 냄새가 많이 나는 강아지였어. 샤워를 하고 나와도 너만의 비리면서도 꼬릿꼬릿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어. 그럴 때마다 이 꼬린내 했던 그 냄새가 너무 맡고 싶어.


고등학교 땐 친구가 소중했고, 재수할 땐 내가 소중했고, 대학교 땐 새로운 세상과 꿈이 소중했고, 군대에서는 외출이 소중했고, 얼마 전까진 준비하던 시험이 소중했어. 항상 휴대폰 배경화면과 카톡 프로필 사진에 너를 띄우고 살면서 정작 어느 순간부터 너를 가장 많이 보지 못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네 눈동자도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어. 그게 아마도 작년 겨울부터였지.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 너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는 게. 그래서일까. 올봄에는 꼭 벚꽃놀이를 가고 싶더라. 우린 공원을 걷고 뛰어다니며, 물도 마시고, 잔디 위 돗자리에 누워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하루를 보냈지.


7월에 있을 시험이 다가오자 더욱이 너를 보러 집에 가지 못했지. 그러다 6월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어. 네가 신장이 너무 안 좋아져서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의사가 그랬다고.

공부할 책들을 챙겨 바로 집으로 내려갔지. 두 달 전만 해도 뛰어다니던 네가 걷기는커녕 방석에 누워만 있더라. 잘 들리지도 않는지 내가 얼굴을 네 코 앞까지 들이밀어야 비로소 그게 난 줄 알더라. 신장이 망가져 먹을 수도 없으니, 다리 힘은 풀리고, 심지어 눈도 점점 풀리더라. 그때마다 칠월아 하고 일부러 깨우고, 주사기로 약을 먹였지. 잘 걷지도 못하면서 피해는 주기 싫었는지 기를 쓰고 베란다에 있는 배변패드에 올라서서 오줌과 똥을 쌌어. 또 아파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방석에 앉아 왔다 갔다 하는 우리를 쳐다 봐 줬어.


고맙게도 3주 정도 네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여줬어. 그리고 나는 설마설마하면서 기대했지. 하지만 결국 너는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어. 네가 떠나던 날의 저녁부터 엄청난 고통에 너는 힘들어했어. 네가 편하게 눈이 감겨갈 때, 네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보내줬다면, 내가 욕심내지 않았다면 네가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미안했어. 그래도 정말 눈을 감기 전 네 이름을 불렀을 때 짧은 대답을 하고 네 심장이 멈췄던 곳이 내 품이어서 고마웠어.




눈물이 마를 때쯤 눈을 떴다. 텁텁한 바람은 계속 불었고 불상의 표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느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무엇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숭고한 일이라고. 칠월이가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절을 찾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속상했다. 더 이상 이 세계에 머물지 않도록 보내주어야 했다. 정말 절을 한 번만 더하면 이렇게 전하는 말도 영영 듣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웠다.

다시 눈을 감았다. 나의 마흔여덟 번의 절 때문에 떠나지 못하여 몸이 찢어지던 마지막 고통에 평생 잠수하는 칠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을 눈을 감고 그 아픔에서 함께 헤엄쳤다. 꼭 끌어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마흔아홉 번째의 절을 하기 위해 온몸을 짓눌렀다. 마지막 절에 부는 바람에 나의 냄새를 걸었다.


칠월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잠에 들어.

여름이라 물놀이도 가고 휴가라 여행도 다녔어. 참 이상하지?

네가 없어도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또 거리에 차들은 똑같은 속도로 달리고, 나무들은 똑같이 바람에 흔들려. 아직은 그게 미안해.

그리고 아직은 마트를 지나다 강아지 간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집었다가 내려놔.

맞다, 시험은 잘 보지 못했어.

네가 시험 전날 꿈에 나왔어. 평소처럼 산책하고 뛰어놀다 답을 모르겠으면 2번을 찍으라며 떠났어. 차마 2번은 못 찍겠더라. 2번을 찍었다가 틀리면 괜히 잠시라도 너를 원망할까 봐. 시험을 3주 정도 앞두고 네가 떠나서 그때 약속했지?

네가 핑계가 되는 게 싫어서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번엔 지키지 못했지만 다음엔 꼭 지켜서 웃는 얼굴로 보러 갈게.

한때는 외동이었던 내게 여동생이었고, 한때는 숱한 좌절에도 웃음 지어 주던 친구였고, 앞으로는 내게 환한 꽃이 되어줄 너에게 이렇게 인사할게.


칠월아,

사랑하고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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