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맞은바라기

by 다날

“일 더하기 일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판사의 질문에 K가 답했다.

“영입니다.”


“자, L교수님 일 더하기 일은 무엇입니까?”

판사의 질문에 L교수가 답했다.

“이입니다.”

“그럼 영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판사가 K에게 다시 물었다.

“피고는 사람을 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판사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피고의 말에 따르면 한 명 더하기 한 명은 두 명일 뿐 아닙니까?”

K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판사에게 말했다.

“적어도 일 더하기 일은 영이란 식이 맞습니다. 그리고 맞기 때문에 방정식처럼 일 하나를 반대쪽으로 넘기면 마이너스 일이 됩니다. 결국 한 명을 플러스하면 한 명은 마이너스가 되어 잃게 됩니다.”

판사는 K가 미친 척하여 형량을 줄이려고 함을 의심했다. 하지만 K가 정신이상자나 심진미약이란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K는 경력이 오래된 소방 공무원이었다. 크고 작은 표창도 꽤나 많았던 터라 K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판사는 잠시 휴정을 명했다.


판사가 다시 재판장으로 들어왔다.

“피고는 여전히 한 명 더하기 한 명은 두 명이 아닌 영 명이라 생각합니까?”

“맞습니다.”

판사는 깊은 호흡을 천천히 뱉으며 K에게 물었다.

“피고는 원고를 협박하거나 스토킹 한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원고 쪽 변호사가 K의 진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가 무언의 눈빛을 보내고 나서야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판사는 안경을 내려 서류를 보더니 K에게 다시 물었다.

“피고는 원고에게 8월 4일부터 8월 6일까지 세 번에 걸쳐 부고장을 전달했습니까?”

K는 판사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또 이후 8월 10일부터 약 한 달간 납골당 주소를 보냈습니까?”

“맞습니다.”

“누구의 부고였습니까? 원고는 모르는 사람이라던데 왜 보냈습니까?”

K는 고개를 들어 잠시 천장을 바라본 후 변호사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변호사는 판사에게 종이를 제출했다.




‘자살’과 ‘살자’는 동일한 음소의 수를 지니지만 의미상의 대척을 이룬다. 따라서 자살을 시도하는 자와 죽음의 문턱에서 살고자 희망하는 자를 구조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분명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인원의 수는 같다. 결국 두 사람을 구조하는 상황은 결코 다르지 않다.

소방서에서 구조대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종별의 신고를 받았다. 특히 자살 구조는 모두 출동했다. 자살 시도 및 의심 신고에 어느 수의 인력이 투입되는지 알고 있는 일반인은 소수다. 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 한 팀, 구급대 두 팀, 펌프차 한 대의 소방 인력과 차 두 대 이상의 경찰 인력이 현장으로 투입된다. 사람의 수로 환산하면 적어도 15명이 넘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위험한 상황에 놓인 요구조자 한 명을 구할 때도 같은 수의 전문 인력이 요구된다.

분명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 대해서 불이익을 부과해야 한다. 스스로 포기하는 삶은 많은 사회적 피해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의지의 포기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여러 방법 중에서 경제적 불이익(벌금)을 선택하는 방향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우선, 앞서 말했듯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는 상황에 많은 소방과 경찰이란 전문 인력이 투입된다. 그들이 공무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엄청난 세금 낭비다. 국민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보호를 세금으로 지불한다. 한 번의 출동은 상당한 육체적 노동이 뒤따른다. 특히 자살 구조는 일반 구조보다 더 많은 장비와 시간의 할애가 요구된다. 국민의 세금은 온전한 상태의 전문 인력에게 보호받을 의무를 뜻한다. 그러나 자살 구조 출동으로 전문 인력의 육체적 피로를 더하기에 정말 구조가 필요한 사람은 보다 완벽한 구조를 받기 힘들다.

또한, 이는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두 가지 이상의 출동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출동 시스템은 가치 판단에 의한 우선도에 따른 순서가 아닌 선 신고 출동을 우선시한다. 실제로 자살 시도의 신고가 들어온 지 4분 정도 지났을 무렵, 관할 지역에 심정지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에서 4분은 상당한 거리를 움직이기 충분하다. 결국 관할 지역의 구급대는 자살 현장에 도착했고, 심정지 현장은 인근 타 센터에서 출동하게 됐다. 관할 지역과 타 지역의 현장 도착 시간은 적어도 10분의 차이가 발생한다. 심정지의 경우, 이는 살릴 수 있는 요구조자를 살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당시에도 그 심정지 환자는 도착 전에 사망했다. 상대적으로 소생이 힘든 노인인 아닌 골든아워만 지켰다면 소생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40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였다. 억울하게도 번개탄을 피웠던 자살 시도자의 의식은 살아났다. 이 상황에도 당신은 모든 인간의 생명은 동등하다는 사고로 눈물을 감출 수 있는가?

나아가 한 사람의 자살 시도는 일반 시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낙상을 통한 자살 시도를 목격한 사람이 신고자가 된 적이 있다. 파리채에 눌린 파리 마냥 자살자의 온몸은 터졌다. 한 사람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처참하게 죽는 순간을 기억에 저장한 사람은 트라우마에 잠긴다. 절대 그 순간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편, 자살 시도의 경계에서 망설이는 자는 그 동네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출동 차량들에 의한 교통체증부터 주변의 진행 중인 일들을 모두 멈추게 하는 물리적 피해 역시 발생시킨다.


누군가는 대체로 자살 시도자는 사회가 외면한 사람들이기에 벌금이 아닌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이는 잘못된 관심 사기 방법이다. 생명은 도구가 아니다. 게다가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자는 구조한 후에도 잦은 시도를 반복한다. 구조의 과정과 그 후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나 오히려 성을 낸다. 따뜻한 관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경제적 문제로 삶을 포기한다. 즉,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역으로 보면, 이런 사람에게 자살 시도의 책임으로 벌금을 물리면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몇 년 전부터 논밭 화재에 대한 규제가 심해졌다. 짚 하나를 태우기 위해서도 시청에 보고를 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농촌 화재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시민들의 신고 의식도 투철해졌다. 결국, 자살 시도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자살 시도에 제한을 둘 수 있고, 많은 시민의 눈이 지켜보기에 쉽게 생각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단순히 돈이라는 물질로 인간을 제한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자살’로 인해 억울한 ‘살자’가 발생하면 안 되지 않을까? ‘자살’은 누군가의 ‘살자’와 ‘살고 있음’을 죽일 수 있다. 물질적 제약이 죽고자 하는 생명의 삶을 억지로라도 이끌고, 살고자 하는 생명의 삶을 살아 있도록 유지해 준다면, 이는 합리적 인방법이지 않을까.



“그 종이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K가 판사에게 천천히 읊조렸다. 판사는 글자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원고의 만취로 인한 자살 시도로 인해 7세 여자 아이가 과다출혈로 응급실 앞에서 사망했습니다, 판사님. 제때 도착했다면 살 수 있었습니다. 판사님, 살리기 위해 뭐라도 했지만 살리지 못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판사님, 그건 처음부터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때입니다.”

웅성거리던 재판장은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K의 흐느끼는 소리가 차갑고도 낮게 바닥을 쳤다. 다시 입을 연 쪽은 원고 측이었다.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자료라니, 협박 사실과는 무관하다느니 판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K는 떨군 고개를 일으켜 세우고 판사를 향해 손을 들었다.

“판사님, 소방공무원이란 제 지위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공포를 느끼고 위협을 느꼈다면 협박일 수 있습니다. 겁박이도 상관없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판사님. 그래도 아직 아이의 몸에 손이 닿아있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우리 같이 죄책감이란 걸 갖고 있다고 아이에게 한 번쯤은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고는 자기 변호사와 웃으며 재판장을 나왔고, K는 제자리에서 입고 있던 정복 상의를 벗어 천천히 갰다.

keyword
이전 21화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