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형이 너에게보왔네.^^ 잘 먹겠다고 인사줘.’
한라봉 사진과 함께 보내온 문자는 띄어쓰기부터 오타까지 틀린 곳 투성이었다. 그러나 이 엉성한 글자는 사실 완벽했다.
작고 낡은 정종 집에는 그날도 새벽까지 어묵 바에서 피어오르는 김으로 가득했다. 아닐 거란 의심과 김밥을 손에 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형, 결혼식 당일 새벽까지 일 하는 신랑이 어딨어요!”
“내일 오후잖아. 그리고 오늘 쉰다고 미리 말 안 했어.”
그는 약속하지 않은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다행히 이날은 새벽 두 시 전에 마감까지 끝났다. 신부를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형은 검은 봉지에 김밥을 담아갔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유일한 형의 20대 동생입니다.”
하객은 웃었다. 형은 2년 동안 알바를 하던 곳의 사장님이다. 형은 그런 나에게 본인의 결혼식 사회 자리를 맡겼다. 자기 친구들은 이미 머리까진 아저씨라며 부탁했었다. 사실 결혼식 사회는 마다하고 스물다섯에게 결혼식장 자체가 낯설었다. 적어도 양복 값은 하고 싶었다. 형은 면접까지 고려한 나의 첫 양복을 선물해 줬다. 바쁜 와중에도 색상부터 수선까지 챙겨줬다.
일반적인 결혼식의 시작은 양가 부모님의 화촉 점화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온전히 내가 대신 전하는 하객을 향한 감사 인사로 대체됐다. 나는 화촉 점화가 생략된 이유에 대해 추론했다. 사회자의 자리에 서게 되니 비로소 그 이유가 보였다. 형의 부모님 자리에는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주례는 신부 측 교회의 목사님이 봐주셨다. 짧은 소개를 끝으로 사회자는 두 주인공의 등장을 지시하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신부가 입장하면서 내가 이 서사의 작가이기를 바랐다. 그토록 짧은 입장의 길은 서로가 그토록 달랐다. 그들의 입장은 식이 거행되고 처음으로 조명이 하객들의 얼굴을 비추는 순서이기도 했다. 조명팀, 음향팀, 연출팀은 시나리오대로 각자의 임무를 이행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의 작가만은 잔인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조연들은 대다수가 신부의 하객이었다. 결혼식의 길마저 형이 여태 걸어온 초라한 가로등의 밤 골목처럼 희미했다.
무교인 형은 공식적으로 신랑이 되기까지 수십 번의 ‘아멘’을 외쳤다. 축가 역시 교회 합창이 전부였다. 아담한 남자는 더욱 작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맞절을 했다. 나의 위치는 형의 아버지가 앉아 계신 바로 뒤쪽이었다. 아버지가 신부를 안아줄 무렵 형은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입 모양은 ‘잘했어.’를 그렸다. 내 동공에 비친 형의 모습은 강물처럼 퍼져 일렁였고, 형의 동공에는 한 소년이 휘몰아치는 강물을 홀로 건너고 있었다. 그나마 형과 달리 아버지의 큰 키는 어머니의 자리를 감쌌다.
퇴장 이후 기념 촬영을 했다. 사회자로서의 긴장이 사라지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명부와 축의금을 담당하던 형 둘, 가게의 얼굴을 담당하던 형 하나, 퇴근 후 매일 맥주 한 잔 했던 누나 하나. 모두 가게에서 형과 일했던 동생들이다. 우리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시시콜콜 가게에 들러 해장을 하며 형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사진 대형은 마치 신랑과 신부의 민낯 같았다. 깔끔하고도 뚜렷하게 보였다. 신랑의 가족은 단출했다. 지인마저도 내가 아는 얼굴들이 전부였다. 우리는 곧장 신랑 측 대형으로 향했다. 겉옷을 풀어 부피를 더하고, 팔을 벌려 두 사람인 척했다. 이날 하루만큼은 그에게 따뜻한 어묵 국물이고 싶었다.
이날 나는 바로 가게로 향했다. 형의 두 번째 결혼식 부탁이었다.
“신혼여행으로 일주일 쉬지만 토요일이니까 이날 당일만 부탁할게.”
가게는 매주 일요일이 휴무다. 13년 간 작은 동네의 유일하게 망하지 않은 구멍가게의 저력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업시간을 지키는 것.
가게는 꽤나 북적거렸다. 가게의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이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 봐요?”라며. 나는 웃으며 오늘 신랑이 되어 신혼여행 갔다고 답했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작은 선물들을 급히 사와 전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항상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형도 원래 처음에는 이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대신 모든 손님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학생이었다고 전 사장님이 말해 주셨다. 전 사장님은 형에게 점장의 자리를 제안했었다. 그 시간이 10년이 쌓여 형은 사장이 되었다. 이름도 모를 손님들이 형의 축복을 크게 빌어주는 이유는 형이 그들에게 먼저 건넨 친절이 팔 할이다. 그 친절은 단순히 영업만을 위한 가면이 아니라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의 신념이었다.
한라봉에 대한 감사 인사 겸 엄마가 싸준 김밥을 전해주기 위해 가게를 들렀다.
“어머니 결혼식 오셨던데 왜 말 안 했어.”
형은 알고 있었다. 엄마는 결혼식 날 형의 얼굴을 식장 끝에서 흘겨봤었다. 형은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당신의 축하를 형에게 비밀로 해달라 했다. 그는 축의금 기록으로 알게 됐다.
“그날 싸주신 김밥 먹고 잤었어. 축의금 기록을 보는데 김밥이 엄마 같더라. 항상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줘.”
나는 괜히 부끄러워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결혼식 날 보니까 형은 작은데 아버지는 키가 엄청 크시던 데요.”
형은 미소를 살짝 머금고 김밥을 하나 집었다.
“아버지 아니야. 작은 아버지야. 아버지랑 연 끊고 산 지 오래됐어.”
어쩌면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걸까. 분명 결혼 전 날 구태여 사회 검토를 명분으로 나를 형에게 김밥 심부름을 보낸 건 안타까운 동정은 아니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또 그런 사람의 마음을 더욱 닦아주는 손길 같았다.
“형, 한라봉 잘 먹었어요. 안 보내주셔도 되는데.”
“형은 챙길 사람이 몇 명 없잖아. 귤보다 한라봉으로 선물할 수 있어서 좋더라.”
형이 엄마의 김밥을 먹는 소리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들렸다. 김밥을 쌀 때 누군가의 저녁이 떠오르고, 특별한 날 누군가의 진심이 기억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그 순간 사이사이에서 미비하지만 그런 또 다른 마음이 어묵을 데우는 김에 앉아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