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영화

맞은바라기

by 다날

해가 짧아져 잠이 길어질 줄 알았다. 길어진 건 밤이었고, 잠은 여전히 바람에 스쳐 까였다. 새벽에 널었던 수건과 속옷은 다우니 향을 머금은 채 빳빳하게 말랐다. 어제 아침만 해도 꿉꿉한 여름으로 젖은 땀은 어디로 가고 시곗바늘 마냥 눈을 깜박였는데 아스팔트는 기를 쓰고 이불을 덮으려 했다. 일출과 일몰이 서로를 마주 보고 해와 달이 안고 있었다. 눈을 뜬 건가 아니면 감았던 적이 없었나 했지만 덕분에 단풍과 은행이 도착함을 알았다.


옆집 여자가 출근하고 그 옆집 할머니가 뉴스를 크게 틀었다. 할머니 옆집 남자는 머리를 말렸다. 층수도 애매한 하나 하고도 반 층 높은 사람들이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에 나는 지겨웠다. 괜히 밤에 잠들지 못한 이유에 죄책감을 저 여유로운 가을에 덮어 씌웠다. 머리는 레고 병정이나 호빵맨처럼 뜯었다 붙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치 누워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진 듯 사고 없는 감각의 오류에서 나올 수 없었다.

옆집의 도어록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침이야, 일어나서 움직여야 할 시간이야, 이상한 사람이고 싶지 않으면 문을 열라고 밤새 잠들지 못한 자에게 떽떽거렸다. 그래서 예매를 했다. 하루에 한 번 상영하는 독립 영화의 조조 시간을 할인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시간이 나에게만 여유를 허락하는 듯했다. 그래도 아직은 더웠다. 영화관까지 가는 모든 아스팔트 위에 깔린 이불이 답답해 보였다. 발로 휘적거리며 이불을 차냈다. 바사삭인지 부스슥인지 아스팔트는 고맙다고 스타카토로 노래를 불렀다. 이상하다면 멜로디 사이사이 쉼표에 호흡이 바빠졌다. 작년 이불들도 이랬다. 다만 쉼표가 줄어들어 박자가 빨랐다. 그러고 보니 작년 그 수많은 단풍과 은행은 어디로 갔을까. 이건 새로운 이불일까 아니면 젖은 땀이 마르며 세탁이 끝나 돌아온 걸까.




조조영화는 티켓 검사가 없었다. 상영관 속 내 자리에 앉고 서야 그 이유도 짐작이 갔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서울 속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면서도 입술 양끝이 찌릿찌릿했다. 나 하나만을 위해 그 커다란 스크린에서 광고를 한다니 자꾸 피식거렸다. 곧 상영관이 암전 됐다. 분명 밤인데 같은 층을 쓰는 사람들의 아침이 스크린에 반짝였다. 나도 모르게 꿈틀댔다. 앞자리도 한 번 차고, 뒤의 빔 프로젝터의 빛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이제 나름 나도 바빴다.


영화관에서 산 콜라는 구태여 한 모금 남겼다. 여전히 초가을은 아스팔트의 목을 졸랐다. 빠른 서사의 몰입에 바짝 마른 목구멍을 침으로 적셔가며 남긴 콜라를 마셨다. 응어리 진 독립영화의 결말이 짧게나마 쳥량해졌다. 상업영화와 다르게 독립영화는 이유 모를 답답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침몰됐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 식도의 감각에 집중했다. 긁는다, 긁었다, 긁는다, 긁었다, 긁는다, 마무리는 꺼거걱 트림을 했다. 아스팔트 위 이불들이 펄럭였다. 웰컴투 동막골의 팝콘처럼 천천히 가을이 춤을 췄다. 다시 마셔라 마셔라 하면 꺼거걱 꺼걱 꺽 걱 쥐어 짜냈다. 위를 한바탕 쓴 콜라에서 일 년의 냄새가 났다. 건조까지 끝난 다우니 향이었다. 단풍과 은행도 매년 이랬을까.




그래도 한 해를 또 지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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