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해를 본다

맞은바라기

by 다날

시계가 멈췄다. 아니 내려앉았다. 선풍기 날개처럼 회전하던 초침이 분침과 시침을 무너뜨렸다. 시간이 사라졌다. 다만 아직 해가 떠 있었고 나는 문득 그들이 떠올랐다.


1)

스위스 그린델발트 역사 건너편에서 파블로프는 눈 덮인 언덕을 올랐다. 아이젠을 장착하고 바라봐도 한숨이 나오는 경사를 썰매까지 끌며 오르고 있었다. 썰매보다도 작은 아이였다. 파블로프의 엉덩이는 이미 하얗게 물들었다. 무엇이 눈이고 무엇이 썰매인지 분간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열 발자국 전진하면 일곱 발자국은 미끄러지는 곳을 왜 오르고 있는지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아주 긴 미끄럼틀을 역행하여 오르는 것과 같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만큼이나 비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파블로프가 언덕의 중턱에 잠시 앉아 있을 때 그의 시야를 상상했다. 하얀 언덕의 끝은 수많은 프랑도 여자친구도 우주도 아니었다. 심지어 집 한 채 없었다. 그곳은 응당 노력의 대가가 없을 수밖에 없는 무의 세계였다.

융프라우요흐행 곤돌라가 정상을 찍고 한 바퀴 돌아오고 나서야 파블로프는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거나 경치를 둘러보는 둥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곧장 썰매를 깔고 앉더니 언덕을 내려왔다. 정말 내려오기 위해 파블로프는 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그는 내 앞에 멈췄다. 겨울의 알프스의 낮은 무척이나 짧았다. 파블로프는 내일이나 다시 썰매를 탈 수 있었다.


2)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처음이었다. 탁자 위의 물병 하나까지 볕을 주어 담은 화가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뮤지엄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괜히 조급해졌다. 작품은 천천히 보고 느껴라 했던가,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고흐는 동생에게 돈을 받아 그림 도구를 살 정도로 가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만을 그렸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가 바라봤던 빛이었다. 등불은커녕 촛불 하나 살 수 없는 형편에 해가 지면 그는 그림을 그리기 힘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 그림의 어둠과 별은 그에겐 희망 따위의 밞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타는 촛불에 한 번이라도 더 붓칠을 하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 그의 어둠과 별의 의미는 아닐까. 그의 고민은 이렇게 짠하고 깊은 바다인데 미술관은 왜 이토록 밝을까 싶었다.

동시에 나는 왜 조급한 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당장 미술관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관까지 오는 길에서도 왜 그토록 최단거리를 찾았는지 알고 싶었다. 어차피 13시간의 비행과 프랑스 파리부터 시작한 여정이기에 이미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땐 늦었던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고흐처럼 왜 시간에 유영하고자 기를 쓰는지는 알아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동쪽에 있는 한국에서 왔기에 평생 네덜란드에서 산 사람보단 시간을 번 셈이었다. 그걸 시차라고 불렀다. 바꾸어 말하자면, 고흐가 필사적으로 그릴 시간에 나는 여유로운 달빛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나의 밤엔 조명도 있었다. 또 고흐가 필수적으로 느껴야 했던 어둠이 이곳에 내려앉았을 때 나는 무수히 많은 빛을 누리고 있었을 테다.

시계는 그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내 멋대로 시간을 해석했던 게 아닐까.


3)

2월의 이발로 공항에는 하루 한 대의 비행기만 이륙하고 착륙했다. 핀란드 사람이 아니고서야 목적은 동일했다. 오로라. 영하 30도를 가뿐히 찍는 바람에 흩날리는 눈은 칼이었다. 나 역시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오로라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발로에 머무는 동안 모든 움직임은 오로라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볼 줄도 모르는 기상 어플을 보며 오로라 관측 확률만을 조심초사 지켜봤다. 밥을 먹고, 허스키 썰매를 타고, 야생 순록을 봐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하늘만 바라보고 오로라를 상상했다.

습도, 구름, 자기장, 달, 별, 기온,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될 때 오로라는 등장한다고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운전을 하여 오로라를 쫓는 건 무식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구름보다 빠르겠으며 자기장보다 강력할까. 하지만 비행기 값이 떠오르고, 렌터카 기름이 아까워서라도 찾아야만 했다.

북극으로 갈수록 볼 확률이 높다는 소문에 내비를 끄고 그린란드 쪽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길은 하나였고 올라가는 것 말곤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보통 샤리넬카에서 보거나 조금 더 위쪽인 이나리에서 오로라를 관찰한다고 했다. 그러나 ‘극지방으로 갈수록’이란 말에 이미 나는 S극이 됐다. 욕심이어도 상관없었다. 결국 바렌츠 해를 앞에 두고 러시아 서북단과 경계를 두고 있는 어느 하늘까지 달렸다.

이쯤 되면 오로라를 봤을 테고, 이제 오로라에 대해 말하겠구나 할 테다. 그러나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오로라는 봤지만 오로라에 대해 말하진 않는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행한 모든 헛짓거리와 고집스러운 낭만을 느껴야만 오로라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랄까.


실패를 거듭하고 오로라를 본 다음날 아침은 고요했다. 처음부터 이곳은 진공에 가까운 적막이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다만 너무 조용해서 이유 모를 답답함이 거미줄처럼 날아다녔다. 답답함은 결국 두려움으로 변했다. 내가 눈 위를 걷는 건지 눈이 나를 움직이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하나의 얼음일 뿐이었다.

방금 해가 떴는데 곧 해가 저무니 저녁 장을 보고 오라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땡 하고 몸의 열이 다시 느껴졌다. 기상 어플로 확인해 보니 정말 세 시간 뒤면 일몰이었다. 하루에 해가 세 시간만 떠 있다니, 대체 여기 사람들은 이 겨울에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싶었다.

예상외로 답을 금방 구할 수 있었다. 아저씨 말대로 모두 마트로 향하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하루에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세 시간뿐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심지어 차가 다니지도 않는 거리를 건널 때 마저 신호를 지켰다. 또 아무도 서로에게 조급함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오로라가 나타난 걸까? 아니면 오로라가 나타난 시간이 단지 정해진 그때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움직인 걸까 오로라가 움직인 걸까? 그래도 아니면 오로라보다 장 보는 일이 더 가치 있을까?

어쩌면 너무나 추운 날씨에 시간마저 얼어붙은 걸까. 다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다 똑같이 그렇게 살았다. 해가 뜨고 지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을 아끼려 십 분을 빠르게 맞춘 시계는 그렇게 부서졌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시계가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이쪽에서 바라보면 저쪽이 건너편이고, 저쪽에서 바라보면 이쪽이 건너편일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빛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해를 쓰고 있으면 파블로프는 썰매를 탈 수 없고, 고흐가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그의 어둠과 별을 담을 수 있고, 다시 내가 해를 가져오면 이나리 마을은 따뜻한 수프를 먹을 수 있었다.


p.s.

시계가 없고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싸우지 않고 서로의 해를 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맞은바라기(건너편)을 바라보며 서로의 그림자 마저 각자의 해로 안아주고 가려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맞은바라기>는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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