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탈출당했다. 죽음으로부터 24시간 전에 걸어 나왔다. 나의 물리적인 의지에 의한 해방은 아니었다. 그 문은 절대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만 출입을 허락하는 문이었다. 동이 틀 무렵이라 문을 열었던 손의 주인은 흐릿했지만 사장 아들이었다. 염라대왕의 사망명부의 예정시간보다 죽음이 당겨진 건지, 사장이 준비한 마지막 함정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어쨌든 내 오줌과 배변이 내 밥그릇과 섞인 이 방에서 한 발짝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동지로 여겼던 다른 방의 입주자들은 적어도 내가 나가는 순간엔 악랄한 적이었다. 그들은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잠든 사장을 깨웠다. 갇힌 놈과 갇힌 놈의 연대는 누군가의 문이 열리는 순간 찢어질 만큼 얇은 철장에 불과했다. 방바닥 끝의 내 눈동자보다도 작은 숨구멍으로 밀어준 쌀알에 감사하다던 아래층 이웃이 누구보다 그리고 크게 사장을 불러댔다. 어제도 사장이 앞 동 2층의 젊은 아가씨를 꺼내가려 할 때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그에게 거센 욕을 하던 모습들은 가짜였다. 어차피 방문 밖으로 나가고 있는 놈이나 방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놈이나 모두 다 죽은 존재였다.
사장의 저택을 벗어나서도 시내까지 전속력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역시 사장은 영악하고 지혜로웠다. 구태여 눈곱 달린 눈으로 나를 쫓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나 하나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국 다시 내가 사장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방을 나와도 죽은 존재라고 하면서 나는 왜 도망쳤을까 한다면 그건 사장의 아들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몇 번도 더 들어갔던 방이 무서웠을까? 아니면 죽음이 무서웠을까? 둘 다 아니다. 단지 사장의 아들이 자기 아빠에게 처음으로 맞선 용감한 투쟁은 나에게 기회였다. 사장에 대한 그의 적대심은 곧 나의 동지란 증표였다.
하지만 사실 나와 사장 아들의 투쟁에는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우리는 그것들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우리는 지금 이 세계의 존재들이 아니라 핍박받고 다치고 있단 걸 확신했다. 더 이상 이곳의 법과 질서에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나는 당분간 자유의 몸이다. 이 자유도 어떤 세계의 기준에 따라 주어진 권리나 억압인지는 모르겠지만, 푹신하고 촉촉한 흙 위에 누울 수 있다는 것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던 선구자처럼 짜릿했다.
선생은 실패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탈출했던 놈이었다. 그의 확고한 신념과 치밀한 계획에 매몰되어 모두가 그를 선생이라 불렀다. 탈출 경험이 있다던 그는 자신이 먼저 나가 우리를 도와줄 동료들을 데려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 불법체류자에 불과했다.
나는 신세계를 만들 수 있다. 내 나이의 반도 되지 않는 어린 인간이 나의 동료이니 말이다. 두 발 달린 인간이 나를 리더로 인정했다. 나를 탈출시킨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개니까. 그것도 아주 영리하고 덩치도 제법 큰 개다.
2
어느 작은 주택가의 분리수거장 옆 화단에서 깼다. 아마도 도망 3일 차쯤 이곳에 쓰러졌나 보다. 다행히 어제는 분리수거 날이 아니었는지 아무도 풀숲으로 튀어나온 꼬리를 보지 못했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가 통에서 넘쳐흘러 배를 채웠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음식들이 많았다. 살점이 두둑두둑 붙어있는 뼈다귀 세 개와 발리다 만 통통한 생선 한 마리가 있었다. 간도 감칠맛 나게 배어있었다.
인간은 참 쓸데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는 미련한 종족이다. 얼마나 시간이 넘치면 재료마다 무치고 비비고 볶고 데치고 별짓을 다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건지. 결국엔 목구멍만 넘어가면 위에서 전부 부대끼고, 남는 건 이렇게 한 곳에 섞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설마 사실일까 하지만 이 짓만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라는 직업도 있다는 얘기도 선생에게 들었다. 뭐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인간은 나보다 다섯 배 이상으로 오래 사니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나 보다.
배가 부르니 이성이 밝아졌다. 꽤나 멀리 도망온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물론 탈출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죽었다. 사장이 주는 방은 특별한 계약을 했다. 계약기간 동안엔 재워주고 먹여주지만,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인간에게 간택되지 않으면 죽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리더로서 동료를 찾으러 가야 했다. 문제는 그 동료가 사장의 아들이란 점이었다. 기껏 죽음으로부터 도망쳐 저승의 문으로 달려가야 하는 꼴이 됐다. 선생도 여기서 주저했을지도 몰랐다. 선구자가 되느냐, 불법체류자가 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직 사장의 아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그도 인간이다.
일단 개의 적은 인간이다. 개인 방석에서 매일 고기로 식사하는 개들의 적도 인간이다. 물론 그런 놈들은 멍청해서 자신의 적이 인간인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말하기를 개는 원래부터 주인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는 본성이 있어 식량과 자원을 나눠주는 자신들에게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건 응당 당연하단다. 더욱이 개는 주인 아래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을 따르지 않는 개는 죽어야 한다고 지껄인다.
우리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 그런 건 인간 중 군인인가 하는 놈들이나 지키는 무모한 신념이라고 선생이 말해준 적이 있다. 우리의 본성은 단 하나, 생존이다. 살기 위해 닭이나 돼지, 염소나 양을 잡아먹는 힘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들은 이런 우리를 미개하고 잔인한 동물로 여기며 그들의 통제 하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과 달리 신체 능력 이상의 힘이 필요한 사냥감을 잡지 않는다. 생존 이외의 목적으로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들의 피부를 위해 돼지의 껍데기를 떼어가고, 실험을 위해 쥐들을 몰살시키며 필요 이상의 따뜻함을 위해 양의 털을 벗겨간다.
인간들이 우리를 충성의 대명사로 착각하는 건 친숙함에서 오는 오해다. 어느 동물이든 긴 시간을 옆에 끼고 살다 보면 서로의 습성을 배우고 닮아가며 진화하게 된다. 단지 우리는 옛 조상들부터 인간의 영리함을 배우며 공존하는 방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물리적 힘의 우위를 공존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추운 겨울이면 사냥감이 없을 때 인간으로부터 식량을 제공받고 반대로 위험에 처한 인간에게 우리의 강한 사냥능력을 빌려주는 것이다. 굳이 서로 잡아먹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서 윈윈 하는 방법을 우리는 택했다. 그러나 영리한 인간에게 우리는 속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저들은 저들끼리도 배신해서 공격하고 나아가 죽이기까지 한다는 사실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세계에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들어 인간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웃음만을 위해 일부러 웃고 구르고 발을 내어주는 수치를 요구한다. 스스로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종족에게 꼬리 내리고 있는 모습이 한스럽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둘로 나눠질 뿐이다.
주인이 있는 개와 주인이 없는 개로 말이다. 주인이 없는 개는 다시 떠도는 개와 떠돌다 잡혀 새로운 주인이나 안락사를 기다리는 개로 나뉜다. 즉, 아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와 죽을 개 중 하나로 우리는 정의된다. 그러니 당연히 고기를 먹으며 따뜻한 보일러 바닥에 퍼질러져 졸고 있는 개들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역시 지금의 자유는 신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지 온전한 나의 자유는 아니다.
3
출구 없는 탈출에 다시 본성이 환해졌다. 일단 살아야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지난 주인의 딸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의미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구절이 떠올랐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선 지금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무너뜨리는 반란자가 되어야 했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인간이 아니었다. 세계의 중심이 아니기에 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일단 당장은 비굴하고 분하지만 사장의 아들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아래에서 힘을 모으는 게 가장 현명해 보였다. 잠시 주인이 있는 개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점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고기로 배를 채우고 햇볕 아래 누웠더니 이 땅의 여유를 즐겨도 되는 듯했다. 몸이 편안하다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나 이상하다면,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있는데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선생이 내 냄새를 맡고 찾아온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선생이 앞에 있다고 믿었나. 아니다! 더 이상 쳐지는 귀를 세울 수도 없이 햇볕이 따가웠다. 누가 다가오고 있다! 너무 몸이 뜨겁다! 아!
4
“야! 개 일어났다!”
“다행이다. 물 한 컵만 떠다 줘.”
종이컵이 천천히 내 코를 들이밀었다. 마구 흔들리는 차가운 물 몇 방울애 나는 정신이 들었다. 목구멍을 빗자루로 쓰는 듯한 따가움에 일단 물을 들이켰다. 물을 삼키는 소리에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대개 물을 마신다고 좋아하는 뉘앙스였다.
“더 줄까?”
쓰라린 성대가 촉촉해지자 종이컵에서 얼굴을 들기가 무서웠다. 그들은 종이컵을 내 입에서 뽑아냈다.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유지했다. 뭘 잘한 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모든 감각이 완벽하게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그 감촉과 냄새는 모를 수 없었다. 낯익은 얼굴이 나를 향해 자세를 낮췄다.
사장의 아들이었다. 내가 찾던 나의 동료, 살기 위한 나의 주인. 하지만 아직도 네 발로 몸을 지탱할 힘은 없었다.
“혼아 근데 저 개는 어디서 데려왔냐?”
“데려온 건 아니고 집에서 훔쳐 왔어.”
사장 아들의 이름은 혼이었다.
“너네 아빠한테 주사 좀 놔달라고 해. 아빠가 수의사면서.”
순간 털이 삐쭉거렸다. 그곳에서 탈출하기 직전의 감각과 비슷했다. 움찔거렸는지 혼은 은은한 힘으로 나의 등을 긁어줬다.
“우리 아빠 수의사 아니야. 살인자지.”
“뭐래. 떠도는 개, 진드기 물린 개, 다리 부러진 개, 구더기에 썩어가는 개 전부 다 치료해 주시잖아.”
“그런 척하는 거지. 우리 센터에 오는 개가 하루에 평균 열 마리 정도인데 그중에 제 발로 걸어 나가는 애는 많아야 한 마리야.”
“그럼 나머지는?”
“나머지? 우리 아빠가 죽여. 수의사처럼 주사를 놔서 죽여.”
혼의 손이 떨렸다. 내 몸의 진동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곳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공실이 생겼다. 저녁이면 새로운 입주자가 시끄럽게 방에서 떠들어댔다. 대개 찢어진 코를 꼬메주고 밥도 줬다고 여기 정말 좋지 않냐는 식이었다. 심지어 오래간만에 씻어서 개운하다는 녀석도 있었다. 우리에겐 죽고 싶어 환장한 놈으로 보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데려온 건 아니잖아.”
“그건 맞지. 그래도 어떻게 멀쩡한 애들을 그렇게 죽여. 개네가 잘못한 거라곤 목줄을 한 채 주인 손에 끌려 다니지 않은 거 말곤 없어. 아픈 애들은 주인이 키우다 버린 애들이고 건강한 애들은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 잡혀온 애들이야.”
“그래서 집을 나왔다고? 몰랐던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잠깐.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혼의 집, 그러니까 사장의 집이 아니었다. 헷갈렸다. 나는 잡힌 건지, 탈출한 건지. 그것부터 좀 말해 봐. 괜찮지 않다니까? 뭐가 계속 괜찮다고 짖지 말래. 그래 내 목만 아프지. 그냥 시끄럽게 짖는 소리로만 들리지 너라도? 계속되는 내 물음에 혼은 나를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나온 거지.”
“그게 뭔데?”
“잡혀 온 애들을 모두 풀어주는 거. 잡혀오지 않게 할 순 없으니까. 잡아오면 풀어주고 도망가다 또 잡히면 다시 풀어주고.”
“뭘 하고 싶단 게 있는 게 신기하네. 근데 너네 아빠가 가만히 있을까?”
“상관없어. 어차피 원래부터 나는 학교도 안 다니는 쓰레긴데 뭘.”
5
나는 특별한 개가 아니었던가. 단순히 계약기간의 종료가 가장 빠른 순서였을 뿐이었던가. 우리 모두를 풀어준다는 것에 대한 질투나 시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묘한 동료애를 느꼈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존재란 사실만이 남았다.
한편으론 그의 첫 반란의 주인공을 내가 맡게 되어 다행이었다. 햄 한 점에 모든 세포들을 내어주는 개를 선택하지 않은 그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그곳에 갇혀 있을 때 항상 사장이 없는 시간에 혼은 우리를 찾았다. 별말 없이 철장 사이로 눈을 마주하곤 떠났다. 감시자의 눈빛은 아니었다. 물어볼 수만 있다면 왜 나였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혼과 대화하는 놈의 말대로 몇 년 전부터 사장의 본모습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가출을 하면서까지 나를 구한 것일까. 심지어 우리 종족을 위해 아빠를 한순간에 적으로 돌린다는 게 가능한가. 아니면 정말 내가 그에게 특별한 개가 맞아서일까.
사실 혼이 자신을 쓰레기라고 정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가출 사유를 나보단 혼의 것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었다. 생각해 보니 혼은 어른이 아님에도 평일 오전에도 우리를 찾았다. 보통 그 시간에 혼은 학교라는 곳에 있어야 했다. 전 주인에게 버려지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학교만큼 쉬기 좋은 휴식처가 없었기에 학생들의 일과를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과자와 물을 나에게 바쳤다.
혼은 내가 봤던 그 나이대의 흔한 인간들과 다르단 소리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마 그것이 혼이 다른 삶을 선택한 원인일 테다. 가벼운 반항 같지는 않았다. 분명 혼은 계획이 있었다. 반란자로서 여물어 가는 신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내가 얼마만큼 그를 믿을지가 우리의 반란이 아름다운 혁명이 되는 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직 저들의 대화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데, 다시 본능이 밝아졌다. 배가 너무 고팠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혼의 말이 지지직거렸다. 이 거지 같은 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