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스키조프레니아는 도망을 정주의 반대로 정의했다. 철창으로부터 탈출하여 도망친 결과가 주인도 모르는 집에 안주하는 꼴이 됐으니, 난 또다시 도망을 가야만 했다. 일단 배를 채워야 했다.
집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혼은 물만 주고 떠난 듯했다. 빛이라곤 식탁 위의 탁상 전등이 유일했다. 식탁의 위치가 애매했다. 거실과 부엌을 나누는 바리케이드 같았다. 구운 고기 냄새조차 부엌을 통과할 순 없어 보였다. 빽빽하게 붙어있는 식탁 의자들이 거실의 이불을 지키고 서 있었다. 고기는 개뿔 먹다 남은 소시지 하나 없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항상 생각했던 그림과는 달랐던 뒤편처럼 식탁 위에서 바라본 집은 더 낯설어졌다. 바리케이드가 전부였다. 양쪽 모두 운무가 무성한 마을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없었다.
싱크대는 무서울 정도로 깨끗했다. 한 치의 물때도 허용하지 않는 결벽증 환자가 아니라 애초에 단 한 번도 물을 흘려보지 않은 듯 알싸한 철 냄새가 났다. 이 집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입에 넣을 만한 건 없었다.
다행히 물은 쉽게 구했다. 화장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는 건 없었지만 바닥엔 아직 물기가 남아있었다. 지난 주인집 화장실에서 변기에 고인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난 이후론 젖은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물만 핥아 마셨다. 건더기 하나 없는 투명한 물이 인간의 배변장소였는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목을 축이니 암순응이 되어 화장실 내부도 밝아졌다. 변기 바로 옆엔 세면대가 붙어있었고, 욕조는 없었으며, 샤워기 옆으로 내 얼굴만 한 창문이 닫혀 있었다. 그만하면 이 집 안에 유일하게 구색이라도 맞춘 장소였다.
여전히 혼은 나타나지 않았다. 배고픔을 불안함이 집어삼켰다. 왠지 모르게 크기만 커진 사장의 집 같았다. 혼이 내가 들을까 거짓말을 했었던 걸까 아니면 집주인이 혼 모르게 나를 팔아넘기려는 걸까 하며 탈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내가 나갈 수 있는 구멍은 없었다. 그제야 든 생각이지만 대체 지금은 낮인지 밤인지도 의문이었다. 처음엔 집 전체적으로 어두웠기에 당연히 밤이라 생각했지만 분명 아까 봤던 혼의 대화 상대는 그의 또래였다. 내가 두 번째 잠에서 깼을 때가 밤이었다면 지금은 새벽이거나 슬슬 해가 뜨고 있을 때였다. 가출한 혼이야 예외지만 다른 녀석은 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부모한테서 버려질 각오를 해야 했다. 그놈도 이 집의 주인이 아니란 말인가.
이 집엔 어른인간이 없었다. 부부끼리 여행을 갔다면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의 밤일지도 모르나, 무엇하나 속단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의 자유시간이 곧 나의 자유시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 새벽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동이 틀 무렵도 아니었다. 집 전체를 통틀어 창문은 화장실에 한 개가 전부였고, 그 마저도 그 밖은 하늘이 아니라 콘크리트 벽이었다. 어느 작은 틈으로부터도 빛은 없었다. 떠돌이 시절 산속에서 바라본 밤하늘보다 어둠의 농도는 짙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건 인내할 수 있지만, 지금이 언제인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압박에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토할 듯이 매스꺼웠다. 또다시 정신을 잃어갔다.
7
혼이 집에 돌아왔다. 집에는 다시 혼과 그놈의 음성이 뒤섞여 들렸다.
“그럼 오늘 본 곳부터 시작하는 거지?”
“우리 센터부터 다 열고 나면.”
“너네 집은 언제 칠 건데?”
“아빠가 보통 열 시면 자니까 열두 시에 시작하자.”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두 시간이면 넉넉하지. 왜?”
“사장한테 두 시간만 어디 갔다 온다 하게. 하루 통으로 빼면 사장 난리 난다. 사정사정해서 구한 자린데, 잘리면 방세도 못 낸다.”
둘은 아직 내가 일어난 지 모르는 눈치였다. 적당한 소음에 후각이 안정됐다. 아직 귀는 비몽사몽 하긴 했지만 저 놈도 혼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였다. 암호 같은 둘의 대화를 이해하긴 어려웠다. 시간과 장소는 알 수 없었지만, 둘이 하려는 일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빨로 발을 자근자근 씹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나 또한 이 작전에 참여해야 했으니까.
혼 옆에 있는 녀석의 정체에 대해 드디어 조금은 알았다. 혼은 그를 한이라고 불렀다. 한은 내 예상과 달리 혼자 사는 학생이었다. 아니지! 혼자 사는 소년이었다. 한도 혼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아 보였다. 아직 왜 혼자 살고, 언제부터 집을 나왔고,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왜 혼을 돕는 건지 등 자세한 건 몰랐다. 정보를 캐내고자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픈 배를 붙잡았다.
“그래도 네가 배달 알바라 다행이다.”
“우리 집까지 안 들키고 빨리 갔다 올 수도 있고 도망치기도 편하니까.”
“뭐래.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도울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우리 사장 오토바이 존나 구려.”
혼은 웃으며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때 내가 도와줬으니까 네가 여기 살고 있는 거지. 나 아니었으면 오토바이는커녕 어디서 자전거나 훔치고 있었을걸?”
한 역시 혼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그럼 뭐 자전거 타고 할래?”
둘은 영락없이 내가 학교를 지나며 마주쳤던 학생들과 똑같았다.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으며 웃는 소년들이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쓰라렸다.
나는 버려진 자식이었다. 물론 내 부모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도망가지도 않았다. 태어난 지 2개월이 좀 넘었을 무렵에 윗머리가 벗겨진 남자한테로 입양되었다. 그가 옛 주인이다.
엄마의 젖을 떼고 엄마라는 존재를 알아갈 때 인간들은 우릴 갈라놓았다. 커서야 알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주인은 나와 나의 형제까지 키우기엔 집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이별을 만들었다. 분노마저 일어나지 않는 정도의 이기적이고 악스러운 명분이었다.
한보단 내가 나았다. 부모가 없어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원망의 대상이 이름도 모를 이방인이기에 마음껏 욕하며 복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쪽도 나였다.
“그날 이후로 너네 부모님은 연락 한 번 없었냐?”
“연락은 무슨, 보조금이나 좀 받게 서류에서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혈연 그게 진짜 병신 같은 거야.”
“그래도 2년만 늦게 나가지. 중학교라도 졸업하게. 배달 말고 다른 일도 하게.”
“됐어. 어차피 학교 다녔으면 자퇴가 아니라 퇴학이었어. 언제까지 애들 삥이나 뜯으며 살겠냐. 갈 때도 없으면서 가출한 너 보면 후회할 수가 없지.”
금방이라도 싸우자는 식의 대화에서 분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인간에게 동정 따위의 짓을 하기엔 에너지가 없었다. 혼도 슬슬 이 웃긴 싸움을 멈추려는 듯했다.
“똑같아 너나 나나. 하나는 엄마 없는 살인자의 아들이고, 하나는 도망간 부모의 아들인데. 거기서 거기다.”
“아니지 그래도 네가 낫지. 누나가 스무 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는 바람에 돈 한 푼 없었는데 돈도 줘, 동생도 봐줘, 누나도 위로해, 시바 네가 다 했네.”
한은 점점 혼에게서 시선을 떨구었다.
“그니까 이번에 잘해서 갚아. 누나는 잘 지내 요즘?”
“누나? 연애한다고 바빠 보이던데? 결혼 생각도 있나 봐. 남자가 좀 사는 거 같던데 그쪽도 생각이 있다나 뭐라나. 최근엔 나도 연락 잘 안 해서 잘은 모르겠네.”
“다행이네. 난 너네 누나가 제일 불쌍해.”
이번엔 혼이 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한에게선 분노의 떨림이 살짝 들려왔다. 인간은 이 미세한 소리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모르지. 아무래도 집에 자기들 말고도 어른이 필요했겠지. 나이만 성인이었지 갓 스물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랬겠냐. 그런 거 보면 고졸도 별 거 없어. 학교 때려치운 놈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도 어른이 되지 못한 누나나 똑같아.”
“그래도 너네 누난 어른이잖아. 우린 뭐냐.”
대화 이후 처음으로 공기가 적막해졌다. 싸움이 끝나서가 아니라 몹시 고민하는 듯한 눈초리로 허공을 바라봤다. 결국 한이 이 웃긴 싸움을 종료했다.
“너 삼단논법은 알지?”
“김한은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래서 김한은 뒤졌다?”
순간 둘은 동시에 큭큭대며 웃음이 터졌다. 진짜 뒤져볼래 하면서 서로를 잡고 뒹굴렀다. 특히 한은 혼보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미성년자는 청소년이다. 청소년은 학생이다.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의 진동이었다. 작지만 한은 내뱉고 있었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떨림의 크기였다.
8
밖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고양이는 아니었다.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당당한 발검음이었다. 사장의 박자는 아니었다. 다음 걸음과 함께 바로 전 걸음의 소리가 중첩되어 들렸다. 점점 간격이 좁아지면서 박자가 빨라졌다.
이 집 현관문 앞에서 발소리가 끝났다. 혼과 한은 길 잃은 대화를 바로 잡는다고 정신없었다. 앞발 끝에 힘을 모아 앞다리를 구부리고 뒷다리는 당겨진 활시위모양으로 휜 채 경계를 했다. 도어록 소리와 함께 혼보다도 어린 인간이 신발을 벗으며 나타났다. 속수무책으로 다리의 힘이 풀렸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만난 인간들 중에 나와 눈높이를 맞춰준 놈은 처음이었다. 보통은 허리만 살짝 굽혀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모자라 꼬리를 잡고 흔들었다. 그는 나와 충분한 시간 동안 눈을 마주친 후 내가 어떤 움직임도 가지지 않자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다시 내가 아는 인간종족과는 다른 놈이 등장했다.
“형 나 왔어. 얘가 그 애구나?”
혼과의 대화를 멈추고 한은 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그 중간에 서 있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배고파. 밥 먹자.”
“그래. 씻고 와. 강혼 넌 뭐 먹을래?”
“귀찮으니까 라면이나 끓여 먹자. 영아 좀 빨리 다녀라. 배고파 죽겠다.”
“형 이제 여섯 시거든?”
한의 동생이었다. 그의 등장은 다소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운 건 시간이었다. 내 계산상으론 절대 저녁 시가대일 수 없었다. 저들이 시간도 못 볼 정도로 멍청하진 않고, 이 집만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건 내가 멍청이를 자초하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정말로 저녁 여섯 시였다. 이 집에는 분명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
한이 라면을 끓이는 동안 혼과 영이 대화를 나눴다. 귀는 그들을 향하고 코는 부엌 쪽으로 돌렸다. 눈은 나만 모르는 이 집의 비밀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원을 그렸다.
“형 이제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거야?”
“당분간은? 괜찮지?”
“개까지 데리고 왔으면서. 예전보다 좀 뜸하다 했어.”
“사정이 있어서. 있는 동안은 나도 너네 형이랑 알바할 거니까 생활비는 걱정 말고.”
“됐네요. 라면도 같이 먹고 좋지 뭐. 근데 이 개는 뭐야?”
영은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혼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 꼭 알아야 했다. 잠시 집 수색을 멈췄다.
“그냥 집에 있던 개야.”
“그니까 그 많은 개들 중에 얘는 뭐냐고. 형 집에 그냥 있는 개가 한 둘도 아니고.”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나만의 오해였나 싶다가도 중요한 계획을 함부로 누설할 수 없어 숨긴 거라 생각했다. 아직 영은 어리니까 입도 가벼울 테고 그러면 작전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저렇게 말한 게 분명했다.
“그냥 내 방이랑 제일 가까운 애였어.”
거짓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사장의 집과 가장 먼 쪽 철창에 수감됐었다. 어느 방을 기준으로 해도 혼의 방과 가장 가까울 순 없었다.
한이 라면을 끓여 오면서 혼의 말이 연기처럼 날아갔다. 나는 이 집의 비밀을 풀지 못했지만 라면 냄새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 나도 배가 너무 고팠다. 혼은 냄비 속 라면을 자기 그릇에 덜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일어섰다. 큰 검은 봉지를 뒤적거리더니 안의 내용물을 깨끗한 밥그릇에다 옮겼다. 사료였다. 사장의 아들 아니랄까 봐 가출하면서 사료까지 챙겨 왔다.
다시 본능이 밝아지고 있었다. 비밀을 알아내기 전에 또 쓰러질 순 없었다. 배를 먼저 채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