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12
머리, 가슴, 배.
머리, 몸통, 꼬리, 지느러미.
머리, 가슴, 배, 등, 팔, 다리.
순간적으로 곤충, 물고기, 그리고 어느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정확히 어떤 색의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림자로만 보면 얼추 그 모양새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미와 사마귀는 제법 덩치가 다르고, 구피와 상어의 수영 실력은 비교불가하며, 인간이야 뭐 말해야 입만 아프다, 트집을 잡아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머리, 몸통.
그럼 이것으로는 무엇을 그렸습니까, 보다 구조가 간단하니 우리의 그림은 색상까지 꽤 비슷할 것 같은데.
눈사람.
정답이다.
그런데, 우린 변형을 참 좋아하니까 (머리, 가슴), (머리, 몸통, 지느러미), (머리, 가슴, 팔, 다리)로 물어보고 답한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는 곤충, 물고기, 인간을 상상한다. 대신 출제의도에 맞추고자 뭐 하나 부족하게 그려낸다. 배, 꼬리, 배, 등 없이 말이다. 역시 사라지는 데는 필요가 없다는 명징한 이유를 확인하면서.
아직 구조가 복잡하지 않나. 우리는 꼬여있는 건 풀어야 마음이 안정되니 뱀을 유혹한다. 똬리를 끊어내고 부드럽게 춤을 추도록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지워준다. (가슴), (꼬리), (팔) 만이 남고 나니 이젠 이것의 그림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어렴풋이 묘소 되는 형체가 없어서 우리의 소묘가 비슷한지 비교하기 조차 어렵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머리)가 사라져서, 그나마 공존에 공유하는 유일한 요소가 소멸되어 그렇다 결론 지으려니, 동시에, 그래서 (머리)가 그토록 중요한 건가 반문하게 된다. 우리가 (머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서로 적당히 똬리를 틀고 살고 싶은 아름다운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인가. 모르긴 몰라도 머리부터 보호하자는 약속을 보면 (머리)가 상당히 중요하긴 한가 보다.
물론 단순히 (머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쓸모 있는 (머리)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누구 말마따나 들고만 다닐 거면 뭣 하러 힘들게 목에 얹고 사는지 우리는 매일 고민한다. 장식품은 기쁨이나 설렘이라도 주지, (머리)는 미학적으로도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눈사람은 말이지... 특이하다.
(머리), (몸통)으로 눈사람을 나눠도 눈사람은 눈사람이다. 큰 눈덩이 두 개를 보고 합치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다. 애쓰지 않아도 분리된 두 눈덩이를 결합된 형체로 그린다. 심지어 (머리)와 (몸통)이 자리를 바꿔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그럼 눈사람에게 (머리)는 의미가 없나 보다.
이상하게 점점 그런 눈사람이 부럽다.
때로는 (머리)에 어떤?을 묻지 않아도 되고, 어떤 (머리)를 상상하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장식품으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유일한 공유 요소라는 이유로 (머리) 승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나, 눈사람이 눈사람인 것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단지,
(머리)가 '있기'만 해도 충분한 눈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은 (머리)가 너무 무거우면 (몸통)이랑 바꿨다가, 그것도 지루해지면, 잠시 (머리)를 띠어내어 (몸통) 옆에 나란히 놓고 차갑고 부드러운 눈을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