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시 무균실, 두 번째 일지

by 내일도 생일

타인 골수이식은 공간부터 달랐어요. 다인실이었던 자가이식 때와 달리 이번엔 1인실이었죠. 거기다 방이 온통 쇠로 되어 있어서인지, 적막하기만 한 곳에 한기까지 감도는 기분이었어요.


작은 방 안에 침대 하나, 그 앞에 TV 하나, 그리고 커튼으로 겨우 구분된 샤워 공간이 있었죠. 그 샤워실은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좁았어요. 11년이 지난 지금쯤은 잊어버릴 법도 한데, 그날의 공기와 온기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네요.


그 시절엔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어요.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게 제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었죠. 하루 종일 보고 또 보고.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렇게 자유롭게 놀러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거든요.


또 하나의 일과가 있다면 간호사 언니들을 기다리는 거였어요. 타인 이식은 의료진들도 자주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죠.


이 시절엔 가는만 하다면 진짜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억겁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표현이 딱이에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추억이 하나 있는데 딸기향 바디워시가 주인공입니다. 어느 날 간호사 언니가 향기가 너무 좋다며 제품 뭐 쓰냐고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뭐라고… 너무 오랜만에 나누는 평범한 대화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친구랑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달까요.


물론 슬픈 기억도 있었죠. 어느 날 샤워하려고 커튼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누가 괴롭힌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서러워지더라고요.

그런 날이 쌓일수록 병동 이모, 삼촌들 덕에 풀렸던 마음의 빗장이 다시 하나둘 닫혀갔어요. 마음이 무너지니 몸에서 힘은 더 빨리 빠져나가고, 시간은 더 느리게 흘렀죠. 악순환이었어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요? 동생이었어요. 부모님도 의료진도 아닌, 바로 내 동생. 내가 이곳에서 포기해 버리면, 막 스무 살이 된 동생이 용기 내어 선물해 준 골수가, 그리고 미래의 기회가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 미안함 하나로 이 시간을 버텼고,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 봐요. "성공은 작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조금씩 힘을 내고 있어요.

앞으로의 일상에도 딸기향 바디워시 같은 작은 행복이 찾아오길, 그리고 동생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잠을 청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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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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