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무균실에서의 89일 생존일기

by 내일도 생일

무균실.
이름만 들어도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지던 그곳에, 마침내 내가 발을 들이는 날이 찾아왔다.


늘 지나치며 궁금해하던 철문. 그 문턱을 넘자 소독실이 있었고, 또 한 번의 문을 지나니 몇 개의 방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로 안내를 받았다. 방 안에는 몇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침대마다 투명한 커튼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저 한 평 남짓해 보이는 공간이 앞으로 내가 숨 쉬고 버텨내야 할, 단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짐을 정리한 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서랍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가져온 책이 왜 없는지 묻자, 소독 과정 때문에 반입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 무균실에서는 책 한 권조차 마음대로 펼칠 수 없다는 걸. 그 사실이 괜히 서글프게 다가왔다.


밥시간이 되었다. 접시에 오른 음식들은 전부 쪄낸 것들이었고, 맛이라 부를 만한 건 고추장이 전부였다. 일반 병동의 식사도 밋밋했는데, 이곳은 그보다 더 무미건조했다. 마치 스티로폼을 찐 맛이랄까?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이식 준비가 시작됐다. 고용량 항암으로 몸속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조리 쓸어낸 뒤, 골수이식이 이어졌다. 과정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또다시 소량의 항암제가 흘러들었고, 내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구토와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밥상 앞에 앉아도 두 숟가락 이상 넘기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먹는 시늉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능해졌다. 결국 한 달 만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살이 너무 없어 앉아 있는 것조차 괴롭더라.


어느 날, 텔레비전 화면에 초코파이가 비쳤다.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보니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여 흘러내렸다.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반드시 초코파이를 먹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그 소박한 욕심이 삶을 향한 거대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박스로도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약속은 지킨 셈이다.


무균실의 또 다른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고여 있는 듯했다. 하루하루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길었고, 공간은 끝없이 좁아만 보였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몸이 지치고, 의지마저 힘을 잃는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음료수를 꺼내려고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도무지 일어설 힘이 없었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한참을 그대로 있었더랬다. 억울하고 서글퍼, 화장실로 달려가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드라마 속 장면으로만 알았던 눈물이, 현실에서는 그렇게 흘러나오더라.


그러나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의 통증이 몰려왔다. 팔과 다리가 뜯기는 듯이 아파, 차라리 팔다리가 없으면 덜 괴롭겠다는 철없는 생각까지 했다. 스물세 살, 나이에 비해 너무 가혹한 고통이었다.


겨우 통증이 조금 누그러지려던 즈음, 몸에 곰팡이균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원은 불가능했고, 일반 병실로 옮겨진 채 무기한 연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부터는, 그냥 머리를 비워내기로 했다. 하루 종일 명탐정 코난만 보며 시간을 죽였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에 집중하다 보니, 도리어 시간이 잘 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포기가 때로는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주치의 선생님은 하루쯤 집에 다녀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조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언제 퇴원할지도 모르는데, 그저 부질없는 희망일 뿐이었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로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곰팡이균은 사라졌고, 마침내 퇴원을 허락받았다.


병원 현관을 나서는 순간, 손이 저절로 얼굴로 올라갔다.


드라마에서 죄수가 석방될 때 눈을 가리는 장면이 단순한 연출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햇빛은 너무나 눈부셔,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더라.


다시 걷기 시작한 세상은 낯설었다. 버스에 올라탄 그 짧은 순간에도, 마치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듯한 기묘한 이질감이 따라왔다. 사람들은 말한다. 고작 석 달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그 석 달은 결코 석 달이 아니었다. 시간이 끝없이 늘어지고, 고통이 살을 파고들던 날들이었기에 반년, 어쩌면 그 이상을 살다 나온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잠든 첫날밤, 그것은 꿈같았다. 혹시라도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그때의 작은 행복을 떠올린다.


침대 위에서 숨만 쉬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일상이 기적처럼 다가온다.


인생은 길면서도 짧다. 항상 행복할 수는 없지만, 일상의 소중함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힘들 때마다, 사소한 하루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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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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