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항암 4차가 끝난 어느 날,
교수님의 호출이 있었습니다.
왜인지 진료실 문 앞에만 서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병원 근처를 스치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 뜁니다.
아마도 몸에 새겨진,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겠지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골수이식 동의서였죠.
교수님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고,
펜 끝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서명은 끝났습니다.
그 순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며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곧 사전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며칠 동안 정기적으로 골수를 늘리는
주사를 맞았는데 통증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그 느낌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몸을 억지로
반으로 접어놓은 듯한 압박이었죠.
앉아도, 누워도, 몸이 꺾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이게 가장 덜 아픈 과정이었다는 것을.
준비가 끝난 뒤,
이동식 침대에 몸을 맡기고 채집실로 향했습니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천장 조명이 눈 위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볍게 스며들었고,
저는 그저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습니다.
채집실 안은 생각보다... 아니, 정말 차가웠습니다.
(골수가 잘 나오기 위함이라네요.)
온기는 싸늘했지만,
마음만큼은 단단히 붙잡고 채집을 시작했습니다.
헌혈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보통 3회 차면 끝나는 과정을
저는 4회 차까지 했습니다.
추위를 견디려고 담요와 수면 양말로 무장하며
버텼지만, 채집한 골수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멘탈이 살짝 흔들렸지만,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엄마를 보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마지막 날,
목에서 피가 피가 나왔고
순간, 눈물이 고였습니다.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버티고 있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는 걸까?
왜 목에서 피까지 토해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무거운 마음이 생각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병실로 돌아오면, 병동 이모와 삼촌들이
괜스레 장난을 치고, 간식을 쥐여주곤 했죠.
그 작은 온기 덕분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길 수 있는 순간이 생겼고,
그 틈새에서 저는 간신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무균실에서의 89일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