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항암의 시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이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던 날들을 담았다.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
‘어리기 때문에’ 귀여움 받았던
시절의 기억을 풀어보려 한다.
21살의 나는 중학생으로 착각받을 만큼 동글동글했고,
키 152cm에 머리카락은 대부분 빠져 잔디 머리였다.
그러니 병실 이모 삼촌들 눈엔
그저 ‘귀염둥이’였을 것이다.
병원 식단에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아가 먹어~" 하며 내 앞에 놓인 음식,
낮잠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쌓여 있는 간식들,
출근길 간호사 선생님이 건넨 따뜻한 김밥 한 줄까지.
솔직히, 이쯤 되면 병원 아이돌 아닌가?
하지만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의심스러웠다.
‘왜 날 이렇게 챙기지?’
‘아파 보여서? 불쌍해서?’
의심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태도도 차갑고 무뚝뚝했다.
커튼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고집했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그 따뜻한 손길은 변하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나도 변했다.
끄덕이던 고개는 “감사합니다”가 되었고,
편의점 1+1 나눔부터 시작해
“이모, 이거 좋아하셔서 샀어요”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시절,
세상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둡지 않다는 걸 배웠다.
나쁜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함께하면 슬픈 순간도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도.
회복 후,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저소득층 아동 교육 봉사였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모, 삼촌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조금 더 알려주고,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그 마음을 지키며 살고 싶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두 손을 내밀 것이다.
병원에서 나는
스승이자 동지를 만났다.
그래서 대학에서
교수님께 학문을 배우고,
동기들과 어울리는 친구들이
생각만큼 부럽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성장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그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그 시절 따뜻한 마음을 나눠준
이모, 삼촌들 덕분이다.
내게 위로였고, 스승이었으며,
동지였던 그분들 없이는
이 이야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영원한 스승이자 동지인
병동의 어른들께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