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도 서열이 있다.
누가 먼저 왔고, 누가 더 아프며,
누가 더 나이가 많으냐에 따라 태도가 갈린다.
특히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도 없이
깎아내림의 대상이 된다.
병상은 평등하지 않다.
내가 그걸 처음 느낀 건,
항암 치료를 시작한 극초기.
같은 병실의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어린 게 아파서,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네.”
무려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당시 스물한 살이던 나는,
차갑고 낯선 병실 생활에 적응하기도 벅차
한마디의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억울함과 두려움을
커튼 뒤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있을까.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단 하나,
태어났고 아팠고, 버텼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내 부모님의 죄는 무엇인가.
아픈 자식을 둔 것인가?
자식이 아픈 건,
깊고 무거운 아픔이다.
세상엔 부모가 자식을 잃었을 때를
부르는 ’상(喪)’조차 따로 없다.
그만큼 말로 표현조차 못 하는 고통이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지금의 나였다면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아프셔서
자식 마음에 짐을 얹으셨나요?”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렸고, 아팠고,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결국 내게 이렇게 남았다.
말은 입술에서 5초 만에 나오지만,
마음에는 50년이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른 같은
어른이 되기로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남기지 않는 말,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말.
그걸 나의 습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지금 나는 다양한 교육 봉사를 통해
어린이부터 어른, 소상공인까지 만나며
매일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생은 짧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입에서 쉽게 나온 말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길.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도
짧은 시간 속에 살고 있다.